[기고]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해서야
[기고]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해서야
  • 김정희
  • 승인 2021.05.23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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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원주시의원]
△김정희[원주시의원]

지난 15일 오후 혁신도시 센트럴메가박스에서는 장애아동, 단체, 학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달장애인 아동들의 멀고 먼 등굣길을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 철저한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나란히 앉은 장애아동과 엄마, 제법 성숙해 보이는 청년들.

‘오늘 만큼은 장애 아동, 그리고 그 부모의 입장이 되어 보자.’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언론매체를 통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무릎 호소했던 어머니들 이야기를 접했던 터라 상영 전부터 가슴에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스토리의 줄기는 지난 2013년 11월 서울시교육청이 강서구 공진초교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행정예고하면서 전개됩니다. 하이라이트는 4년 뒤 열린 주민토론회였습니다. 여러 반대 목소리가 뒤엉킨 가운데 한 장애아동의 어머니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지나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장면이 잠시 이어지는 사이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훌쩍 거렸습니다. 저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들 집 앞에 지어봐!”라는 목소리가 귓전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그러자 한 학부모가 “그러면 저희가 무릎 끓고 사정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학부모들은 하나, 둘 앞으로 걸어 나와 마치 죄인(?)같은 심정으로 무릎을 끓고 호소했습니다. 울먹이고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전후 맥락이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지금도 이 대목이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저거 다 쇼하는 거야.”라는 날카로운 말의 화살, 그러자 전동휠체어에 앉아 힘겹게 입을 크게 벌리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장애인의 모습이 오버랩 됐습니다.

90분 만에 영화는 끝났지만 영화가 남긴 파동은 컸습니다. 65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눈물을 쏟은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숙연한 표정으로 영화관을 빠져 나갔습니다. 뒷모습에서 ‘우리에게 또 어떤 아픈 현실이 닥칠지…’ 학부모들이 이런 걱정을 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 영화가 공개된 후 당시 학부모 대표는 TV에 출연해 “제가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가 아니고 주민들 입장이었다면 저도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속 깊은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물론 주민들 입장에서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을 설립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가 마치 혐오시설로 취급받는 것 같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학부모의 말처럼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현실의 벽은 높고, 넓습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이 아쉽다는 생각은 저 하나뿐만이 아닐 겁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장애인, 예비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어느 한 순간 나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 딸, 특히 손주가 장애를 앓고 있다면 가족으로서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진 한은 당사자들 아니면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이 보다 하루 먼저 사는 게 소원입니다.” 앞으로 거칠고 험한 인생을 살면서 사회로부터 온몸으로 체험할 냉대, 차별을 생각한다면 저로서도 아이보다 먼저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애아동들이 유일하게 사회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헌법적 가치인 학습권이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누구에게는 생존과 같다’는 유튜브의 영화 리뷰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장애아동 학부모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서진학교는 2020년 3월 개교했습니다. 당시 장애아동들은 이제 청년이 됐다고 합니다. 서진학교에서 배움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채 말이죠. 그리고 훌륭한 시설을 갖춘 그 학교에서는 지금 다른 장애아동들이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원주지역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특수학교인 가온학교가 설립됐습니다. 동해 특수학교도 반대 목소리에 공전을 거듭하다 지금 공사 중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그 사회의 품격이자 국격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설움에 몸부림치는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개개인의 미래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한 학부모의 외침이 지금도 귀전에 맴돕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사는 게, 이게 욕심입니까.”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학부모들에게는 딴나라 얘기 같은 현실,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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