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어떤 우화
[세상의 자막들]어떤 우화
  • 임영석
  • 승인 2021.06.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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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토끼가 거북이의 꼬임에 빠져 용왕 앞에 가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제 간은 내 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속 깊은 숲에 숨겨 두고 다닌다"라고 거짓말을 하여 살아서 돌아왔다는 우화는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한가를 묻고 싶다. 이는 절실할 때 거짓말도 진실하게 말해야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너나 나나 토끼의 이 거짓말 같은 말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온다.

30대의 당 대표가 나타난 것을 두고 세상이 변해간다고들 말을 하고 있는데, 정말 변해가는 과정이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30대 당 대표가 생각하는 생각처럼 그 조직 속에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들이 젊은 당 대표의 이미지 뒤에 숨겨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는 더 크다. 이는 토끼가 간을 숲속에 숨겨 두고 왔다고 하는 말은 한 번은 통할 수 있겠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수지의 관리인이 바뀌었다고 물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이치와 같다는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공정, 혁신, 변화를 외친다. 입으로는 공정, 혁신, 변화를 수만 번, 수천 번, 부르짖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공정과 혁신, 변화라는 것이 입으로 외치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물을 보면 그 강물을 이루기 위해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이 있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모래 산이 바위산이 되려면 모래알을 녹이고 바위로 굳어가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결론이다. 산의 숲이 울창하지 않는데 강물이 맑게 흐를 리 만무하다. 공정, 혁신, 변화라는 것도 어느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번 쳐다보고 // 또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구름 한번 쳐다보고

▲강소천 작 「닭」 전문

위의 동시는 1937년에 쓴 강소천 아동문학가의 「닭」이라는 동시다. 닭은 물을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물을 삼키는 구조를 지녔다. 닭의 이런 행동을 고칠 수는 없다. 이런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닭이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고 정말 오랜 시간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물을 삼키는 변화의 과정이 몸속에 스며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공정, 혁신,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왜 우리들 마음에 깊이 뿌리박혀 있어야 했던가를 생각해야 한다.

과거 우리 사회는 통치의 방법, 정치의 방법, 사회조직의 방법들에 있어 지시 일방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용인되어 왔다. 때문에 목적보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30대의 당 대표를 만들어 냈다고 보고 싶다. 과거의 정치는 조직과 돈이 없으면 꿈꿀 수 없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돈 없고 조직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기엔 역부족이란 소리를 많이 한다. 그만큼 미래의 비전보다도 돈과 조직이 더 우위에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세상 곳곳에 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미 닭으로 태어난 태생을 바꿀 수는 없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물을 먹는 방법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토끼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나도 물속에 살아가는 물고기의 삶을 닮아갈 수 없다. 또한 물고기도 물 밖으로 나와 살아가는 데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세상은 물속과 물 밖의 세상을 모두 만족시킬 대안이 특별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공정이라는 것은 물 밖의 것이 물속에 들어가 함께 살아가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물속의 것이 물 밖의 것과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공정함이란 공평하고 올바른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은 붕괴가 되게 되어 있다. 공정함이 붕괴된 세상은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다. 토끼의 간을 갖고자 원했던 용왕이 왜 처음부터 토끼의 간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토끼가 용왕 앞에서 왜 내 간은 숲속에 숨겨 놓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 이 우화(寓話)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토끼와 용왕의 머릿속에 숨겨진 삶의 손익계산에 분노를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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