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이혼해 주겠다는 각서
[이재구 칼럼]이혼해 주겠다는 각서
  • 이재구
  • 승인 2021.06.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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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변호사]
△이재구 [변호사]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의 일방이 작성하여 상대방에게 교부한 ‘각서’를 많이 보게 된다.

‘주말에 안나가겠음. 21:00 이전에 들어오겠음. 약속 위반 시 상대방이 똑같이 늦게 들어와도 어떤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음’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내의 말을 믿고 존중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항상 진솔하게 말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성질내지 않는다(폭언 포함). 앞으로 이를 위반할 경우 원하는 대로 이혼에 응함’
‘여자 000는 앞으로 다시 만나게 않겠음. 만약 여자 문제가 발견되면 과거의 행동도 모두 인정하고 재산분할, 자녀 양육권 일체를 포기하고 집을 나가겠음’

어떤 부부는 서로 각서를 한 종이에 쓰기도 한다.
‘남편 : 밥상에서 반찬 문제로 부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다시는 없도록 하겠음.’
‘부인 : 사소한 일들이지만 사람을 순간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함. 참고 사는데 부덕이라니 또 넘어감’

각서를 써주는 것만으로 부족하면 공증사무실에 가서 공증인으로부터 각서를 인증한다는 ‘인증서’를 받기도 한다.

혼인 중에 작성한 각서에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혼에 응하겠다는 내용,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내용, 재산분할도 포기하고 빈 몸으로 나가겠다는 내용이 있다면 어떤 효력이 있을까?

상속이나 증여에 관한 상담을 할 때에도 각서를 많이 들고 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어떤 여자 분과 살기로 하셨는데 그 여자분이 자꾸 혼인 신고를 하자고 해서 걱정이에요.”

자식들은 연로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여자가 들어와 아버지의 혼을 다 빼놓고 아버지는 그 여자에 빠져 재산도 주고 혼인신고도 하려고 한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여자분이 작성했다는 각서를 들고 오기도 한다.  ‘상속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연금에 대한 권리만 받겠다. 000’

부모님은 살아 있거나 요양병원에 계신 데 자식들끼리 상속재산에 대한 합의서를 쓰기도 한다. ‘000토지는 장남이, 예금은 차남이, 집은 딸이 상속받기로 상호 합의함. 장남 000. 차남 000. 딸 000’

결론적으로 말하면 위에서 쓴 각서들은 모두 무효이다. 세계 부호 1위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는 이혼하면서 부인 매켄지에게 당시 재산의 절반인 76조 원을 지급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43조 원을 주고 이혼하였다. 미국 워싱턴 주법에 의하면 이혼 시 재산의 절반을 분할 해 주도록 하고 있는데 절반에 못 미치는 재산을 준 것은 혼인 전 재산분할 약정(Prenuptial Agreement)을 한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혼전계약이 효력이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혼인 중 또는 결혼 전에 미리 이혼을 전제로 한 재산분할을 정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재산분할 청구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작성해도 이혼할 때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사망하기 전에 상속재산을 포기하는 것도 무효이다. 

각서 중 최고는 혼인서약이다. ‘평생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아내가 되겠습니다. 평생을 지켜주고 감싸주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혼인서약도 못 지키는데 새로 각서를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로를 비난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각박한 현실에서 각서가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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