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현기증을 유발하는 ‘기억의 병목현상’
[비로봉에서] 현기증을 유발하는 ‘기억의 병목현상’
  • 심규정
  • 승인 2021.07.04 22: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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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지인 가운데 이런 분이 있다. 내가 옛날에는 어떠했는데, 누구는 그때 그저 그랬는데라며 이런 말을 늘상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았다. 과거의 굴레에 갇힌 사람이란 느낌을 지을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한 채 화려했던 과거만 전두엽에 켜켜이 새겨 놓은 사람이었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마당에 30년 전 사고에 갇혀 살고 있다니, 참 갑갑한 사람이다.”라고 속말을 되씹었다. 

우리를 현재의 교차로에 데려온 것은 과거이므로 과거는 중요하다. 과거에서 교훈을 배우고, 현재를 바꾸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를 알아가면서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 정면교사(正面敎師)로 삼을 만한 게 부지기수다.

요 며칠 전 눈에 익은 단골 레퍼토리가 연출됐다. 원주추모공원 진입로 개설을 둘러싼 국민의힘 시의원들과 원창묵 원주시장 사이의 공방전은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진입로 개설 당시 수의계약이 맞네, 경쟁입찰이 맞네 라든가, 혈세를 얼마 낭비했다느니...특히 당시 국민의 힘 공세를 직격한 원 시장의 SNS 게시글이 적절했는지가 다시 소환됐다. 

각 쟁점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지만, 불문곡직(不問曲直)하겠다. 가볍게 유감 표명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사안을 너무 부풀렸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의원들은 시정의 견제 감시역할에 충실해야 하므로 분명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시제로 보자. 추모공원 진입로는 이미 개설됐다. 이용객들은 대체로 불편 없이 이용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나선 시의원들의 “원창묵 시장은 사퇴하라.”라는 외침은 대답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이번 시의회 행정사무 조사 결과를 보면 이와 관련된 언급이 전혀 없다. 이러니 시의회 안팎에서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니, 슬슬 몸을 푸는 모양이네.”라며 비꼬는 분위기다.

분명 과거는 존중되어야 한다. 허나 실리도 없이 과거라는 퍼즐 맞추기에 몰두하다 보면 현재에 전심전력할 수 없다. 과거에 의한 인지적 병목현상에 사로잡히면 미래는 복잡다단할 뿐이다. 어떤 상황이라는 게 전후좌우, 사방천지 여러 고려요인이 많은데, 단선적인 양 가치 척도로만 현재를 재단하는 것은 자신만 옳다는 ‘선택지지 편향’, 상대를 나쁘게 해석하는 ‘적대적 귀인 편향’에 다를 바 없다.

일찍이 대문장가들은 “현재에 집중하라.”라고 설파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송시(頌詩)에서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강조했다. ‘현재에 집중하라’, ‘현재를 즐기라’는 뜻이다. 이와 유사한 ‘찰나삼매’라는 말이 있다. 찰나는 ‘순간’, 삼매는 ‘집중하라’라는 뜻으로 역시 ‘현재에 집중하라’라는 것이다. 백지 같이 창창한 미래는 현재가 결정한다는 말은 그래서 꽤 설득력이 있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미국의 솔 벨로(Saul Bellow)의 소설 ‘오늘을 잡아라‘에 등장하는 문구는 삶의 좌표를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신산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명구(名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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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숙 2021-07-05 14:10:04
대표님 말씀에 백번 공감합니다.
과거에 집착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현재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학합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최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