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면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꼽는다. 물론 평론가나 음악 애호가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의 작품 대신 ‘부르흐(Max Bruch)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빠지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필자의 솔직한 심정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니, 그냥 다섯 곡을 모두 포함하여 <5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역시 베토벤의 작품이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와 현악4중주, 피아노 트리오 등 바이올린에 관련된 곡을 많이 썼지만 정작 바이올린 협주곡은 하나뿐이다. 이 곡은 그가 36세인 1806년에 쓴 곡으로, 그 해 12월 23일 당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치던 클레멘트(Franz Clement)의 독주로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는 “클레멘트에게 헌정한다”고 되어있지만, 출판본에는 ‘브로이닝’에게 헌정한다고 되어 있다. 결국 출판본에 나와 있는 것이 맞겠지만, 이 곡을 쓰게 된 동기나, 이 곡에 쓰인 바이올린 연주 스타일에 관한 것들에 대한 ‘클레멘트’의 직간접적인 영향이 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곡의 헌정에 관해서는 다소 의문이라는 생각이다.
이 곡은 “바이올린 독주가 포함된 교향곡”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러한 점이 이전의 바이올린 협주곡과는 크게 다른 혁명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종전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 반주’ 차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악장은 팀파니의 가벼운 ‘D음 4분음표의 4연타(다음 마디에 이어지는 음까지 포함하면 5연타지만 첫 마디의 네 음이 중요하다는 뜻)’로 시작되며, 이것은 10~13마디에서 오케스트라 현악기군에 의해 D#음과 A음으로 재현되며 이후로도 목관악기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이 곡의 중요한 동기이다.
‘협주곡’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카덴짜’인데, 카덴짜는 무반주 독주로 연주되며, 독주자들은 이 ‘카덴짜’ 부분에서 자신의 연주 기량을 한껏 뽐내곤 한다. 카덴짜는 보통 1악장의 후반부에 나오며 1악장의 하이라이트 부분들을 리뷰하는 형태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전해지는 말로는 베토벤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카덴짜 부분에서 연주 기량을 뽐내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카덴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연주자들이 카덴짜를 빼고 연주할 리가 만무….
요하임(1831~1907), 클라이슬러(1875~1962)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린의 대가들이 카덴짜를 만들어 놓았고, 연주자들이 스스로 작곡해서 붙이는 경우도 많다.
또한 베토벤은 ‘소나티네’로 유명한 ‘클레멘티(Muzio Clementi)’의 요청으로 이 곡을 피아노 협주곡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는 카덴짜를 작곡해 넣었다. 이것을 다시 바이올린 버전 카덴짜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이 곡이 초연될 당시의 반응은 다소 애매한 상황이었다. 작곡이 늦어져서 연주시간을 얼마 안남겨 놓은 상태에서 악보가 도착했지만 대체적으로 훌륭하게 연주되긴 했고, 청중들의 호응도 꽤 열렬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 자체를 두고서는 엇갈린 평가가 있었다.
그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베토벤의 명성답게 웅장하고 철학적이기는 하지만 연주시간이 지나치게 길고 난해하며 특정 부분의 반복이 너무 많았다”라고 압축할 수 있다.
이 곡은 베토벤 특유의 철학적인 면이 강조된 곡으로서, 웅장한 분위기와 함께, 로맨틱한 선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곡으로서, 연주자들에게는 두 요소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까다로운 레퍼토리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