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요즘, Hot한 우산!
[세상의 자막들]요즘, Hot한 우산!
  • 임영석
  • 승인 2021.09.05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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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며칠 전 법무부 차관이 브리핑을 하며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준 과잉 의전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카메라 초점을 방해한다는 원성 때문에 우산을 받쳐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누가 보아도 과잉 의전이란 논란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이러한 과잉 의전의 실수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옛 사극에서 임금이 행차를 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행렬의 규모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들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사사건건 실수가 따라다닌다. 이를 잘 나타내 주는 이야기가 세조 10년(1464년) 병을 고치러 법주사로 가는 길에 늘어진 소나무가 임금님 행렬이 지나가자 늘어진 가지를 저절로 들어 올려 무사히 지나가게 했다고 하여 정이품을 제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소나무도 임금이라는 제왕 앞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모습을 만들어 임금이 권위의 상징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이 땅에서는 권력 문화의 상징처럼 되어 왔다.

요즘 어느 광고에서는 우산을 상대방에게 더 기울여주는 배려심을 부각하여 친절함을 상기시켜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지나칠 정도로 예를 다하는 것이 친절이라는 덕목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방하착, 착득거(放下着, 着得去)’라는 말이 있다. 방하착은 ‘집착, 갈등, 번뇌, 원망 같은 말을 내려놓으라’는 것이고, 이와 반대로 착득거는 ‘마음에 지닌 온갖 잡다한 생각을 버리면 그 버린 생각이 세상을 더럽히니 그것마저도 그대로 가져가라’라는 뜻이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방하착에만 집착하여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한다. 갈등, 번뇌, 원망, 집착 같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강요하지만, 실로 중요한 것은 방하착에 안주하지 말고 착득거의 마음처럼 갈등, 번뇌, 원망, 집착 같은 것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마음속에 삭혀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희망, 평화, 평등의 바다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법무부 차관 뒤에서 우산을 받쳐준 이는 아무 뜻 없이 비를 맞지 않게 하는 마음으로 차관을 모셨을 것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 원망, 집착, 번뇌의 상징으로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비가 온 것이 가장 큰일이고, 이 비를 통제할 사람이 없기에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 우산을 들고 비를 가려줘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이루어진 실수다. 이 세상, 사람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름다운 게 세상이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 이 고생이구나 // 나를 떠나면 / 두루 하늘이고 / 사랑이고 / 자유인 것을

▲정현종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전문

정현종 시인의 시 「어디 우산 놓고 오듯」을 읽어 보면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가면 우산을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와도 나를 잃어버리고 오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를 너무나 소중히 챙기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비추어지는 내 모습이 어떠하든 모든 것을 버리고 살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죽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에서 죽는다고 한다. 권위에 취해 사는 사람은 권위에 얽매여 죽게 되어 있다. 요즘 뜨거운 우산도 우산이지만, 그보다 더 요란스러운 것은 아버지 땅 문제로 흉잡힌 흉을 놓고, 내 흉보다 네 흉이 더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장막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몰라도 내 흉을 세상이 쏟아놓고 그 흉을 거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착득거의 마음을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다. 

세상 온갖 번뇌와 오욕칠정(五慾: 식욕·물욕·수면욕·명예욕·색욕, 七情: 기쁨·화·즐거움·사랑·슬픔·미움·욕망)을 세상에 쏟아내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삭히고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품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 착득거를 깨닫고 살아온 사람이 국민에게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받쳐 줄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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