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재난지원금을 통해 본 우리 사회
[세상의 자막들]재난지원금을 통해 본 우리 사회
  • 임영석
  • 승인 2021.09.26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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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코로나19로 세상이 흉흉하니 그 흉흉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 주려고 정부가 국민 88%에게 재난지원금 25만 원을 주면서,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다. 그 한 예로 재난지원금 계급표가 나돌고 있다. 노비, 평민, 6두품, 진골, 성골 등의 계급으로 노비, 평민은 88% 안에 드는 사람들이고, 6두품은 건강 보험료 기준 초과자이고, 진골은 상위 7%, 성골은 상위 3% 안에 들어 살아가는 사람이란다.

이 때문에 6두품, 평민, 노비라 지칭되는 계급의 재난지원금 수령자들은 25만 원을 받으면서도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말 그대로 “나는 일만 죽어라 하는 노비다”라는 인식이 가슴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100%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이러한 사회적 갈등 구조를 없애고, 잘 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을 구분하는 모순을 차단해서 갈등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88%라는 못을 박고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지급을 하고 있지만, 경기도 같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100% 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형평(衡平)이라는 말은 균형이 맞았을 때 쓰는 말이다. 지금 88%라는 균형의 저울이 맞지 않고 있으니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노비로 일만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탄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이는 놀부 마누라가 흥부를 주걱으로 뺨을 때리자 맞은편 뺨을 다시 내밀어 한 대 더 맞겠다는 울며 겨자 먹는 식의 몸부림이나 다를 바 없는 울분의 목소리다.

논리적으로는 잘 사는 사람은 잘 살아가고 있으니 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12%를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는 12%를 가려내는 인건비며 수고스러움, 그리고 국민의 갈등 등을 고려한다면, 100% 재난지원금을 주었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재난지원금을 주면서도 우리 사회는 지금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하는 데도 주소지 관할에서만 올 12월 말까지 사용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군인, 재소자, 장기적으로 입원한 환자 등은 그 사용 권한을 제약받게 되어 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차라리 지역에서 사용을 권장하려면 지역 상품권으로 통일을 한다거나, 주소지에서 불가항력으로 사용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굳이 지역을 편 가르고, 사용 기한을 제한한다는 것은 중이 제 머리 못 깎으니, 스스로 머리를 깎는 놈에게만 주겠다는 얄팍한 포석이 뒤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밭이 한참 갈이 / 괭이로 파고 / 호미론 풀을 매지요. //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 // 왜 사냐건 / 웃지요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전문

김상용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를 읽어보면 새소리도 공으로 듣고, 흐르는 구름도 공으로 보고, 강냉이가 익어 간다. 그 익은 강냉이를 먹으러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왜 사냐고 묻거든 다른 말보다 빙그레 한 번 미소 지으면 그 속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이 다 담겨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렇게 여유와 포용과 유머가 넘쳐났으면 좋겠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 딱 잘라서 ‘너, 나’라는 구분보다는 우리라는 말, 다 함께 어깨동무하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재난지원금을 통해 사회적 민낯이 곳곳에서 많이 드러났지만, 희망의 불빛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위로하고 코로나19로 상처받은 마음을 보살펴 주기 위해서 88%라는 국민에게라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준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통치자는 국민의 아픔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답을 제시했다고 본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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