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길가메시 신화에서 인생 2막의 지혜를 보다
[기고]길가메시 신화에서 인생 2막의 지혜를 보다
  • 김대중
  • 승인 2021.10.03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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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언론인)
△김대중 (언론인)

지난 주말에 최근 공직에서 은퇴한 선배 한 분이 옻칠기공예관에 들렀다. 차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뭐 하실 거냐”고 묻자 “아직 결정한 것은 없지만 사무직으로 평생 일했으니 몸으로 할 수 있는 노동을 하고 싶다. 손발 움직여서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일하며 살고 싶다”라고 했다. 

충분히 공감이 갔다. 손에는 인체의 모든 신경이 연결돼 있어 은퇴 후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라고 학자들은 권한다. 

육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아주 과한 노동이야 계속할 수 없으니 적당한 것을 말할 것이다. 

공예관에서 옻칠작업하면서 지내다 보면 가끔 은퇴한 선배들이나 좀 일찍 나온 후배들이 들른다. 대화의 공통 주제는 인생 2막을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이다. 

그런데 은퇴 후에도 재미나고 바쁘게 사는 분들과 그렇지 못한 분들로 나뉜다. 공통점은 전자들은 현직 때부터 일찍이 취미 생활로라도 은퇴 후를 준비했고 후자들은 그런 준비를 못 했다는 것이다. 

백세 시대를 맞으며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최소 20년 이상을 뭣을 하며 살 것인가. 용돈벌이든 생활비든 돈과 건강한 삶을 위한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때이다. 

나는 현직 때부터 원주옻에 관심을 갖고 벌써 10년 전에 옻의 나라 일본의 현장을 견학하고 국내 관련 도시들을 방문하며 공부했다. 그건 참 잘한 일이라고 지금도 자찬한다. 

인생 2막에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게다가 의미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그런데 준비를 못 했어도 생각이 중요하다. 인생 2막에라도 나의 인생을 살아 보겠다는 생각이다. 

남의 인생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초고령 사회에 인생 2막은 힘들어질 수 있다. 

앞으로 4년 2025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가 된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해마다 70여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2028년까지 노인 세대로 들어선다고 한다. 

이들의 60% 이상이 고졸 이상의 학력에 80% 이상이 일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옛날 노인 세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수메르의 왕 길가메시 전설이 있다. 수메르는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고대 국가이다. 

길가메시는 어느 날 친구 엔키두와 여행을 하다 괴물 흠바바를 만나 싸워서 물리쳤는데 친구 엔키두가 그만 죽어 버렸다.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죽음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길가메시는 자신도 결국은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영생을 찾아 나선다. 길을 가다가 불사의 신 우트나피슈팀을 만난다. 우트나피슈팀은 신들이 인간들을 대홍수로 없애려 할 때 큰 배에 동물들을 싣고 살아남아 신이 된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성경 ‘노아의 방주’의 뿌리가 된다. 

그는 길가메시를 불쌍히 여겨 영생의 약초(불로초 같은 것)를 선물했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들뜬 기분으로 우물에서 물을 마시느라 돌 위에 영생의 약초를 두었는데 그만 뱀이 집어 먹어 버렸다. 

영생의 약초를 도난당한 길가메시는 너무나 실망했다. 엉엉 울면서 우트나피슈팀에게 절규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우트나피슈팀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런다고 영생의 약초를 다시 구할 수는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거라.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게 살아라.” 

4,6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서사시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생 2막에 많은 것을 시사하는 전설이다.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재미있게 살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4,600년 동안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다. 전혀 진보하질 못했는데 늙지 않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삶에 대한 답은 4,600년 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인생 2막을 살면서 길가메시의 이야기를 종종 써먹는다. 너무나 적절한 이야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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