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떻게 억겁의 시간을 버텼을까
[기고] 어떻게 억겁의 시간을 버텼을까
  • 변은혜
  • 승인 2021.11.21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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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혜 [작가]
△변은혜 [작가]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는 천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반계리 은행나무’라고 불린다. 이 은행나무는 11월 초가 되어야 만개한다. 너무 일찍 가면 초록빛이 감돌아 그 감동이 덜할 수 있다.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원주에 살아도 SNS상으로만 감상했을 뿐 직접 가보지 못했다. 함께 걷는 모임에서의 이번 출발지는 ‘반계리 은행나무’였다. 반계 초등학교에 주차를 하고 정문으로 나가 조금만 걸으면 그 나무를 볼 수 있다.

이 나무의 나이는 800년 또는 1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한다. 나무속에 흰 뱀이 살고 있어 지금까지 나무가 다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는 전설로 인해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꺼번에 단풍이 들면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다.

일행들과 주차를 하고 은행나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동네는 아주 오래된 시골 느낌으로 주변에 논과 밭,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걸어가는 길 주변에는 몇 그루의 작은 은행나무들과 이미 초록빛을 잃어버린 손질되지 않은 갈색 톤의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여름의 강한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다 수확해 버린 빈터들만이 공허하게 옆에 늘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시야가 확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저 멀리서 헤아릴 수 없는 노란 잎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면서 드러나는 나무의 풍채는 장관이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도 멋들어졌지만, 실물로 보는 그 나무는 더욱 거대하고 장대했다. 가꾸어지지 않은 주변 풍경보다 그 나무만이 유독 강렬하게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나무의 높이와 넓이, 그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몇 개의 나무를 합친 것처럼 보였다. 한 일행은 나무가 하나인지, 몇 개가 합쳐진 것인지 물었다. 많은 잎과 가지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그것을 받치고 있는 기둥의 두께는 꽤 두꺼워야 했을 것이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일행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나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나무 전체를 카메라 프레임에 담기도 하고, 노란 잎들만을 담아보기도 했다. 사진을 다 찍은 후 우리 일행은 또 다른 길을 걸어야 했기에, 은행나무와의 짧은 만남을 모두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나는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길을 걸으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천년이 넘었다고?’. ‘아는 지인은 어릴 때 이 동네가 외가라 이 나무 밑에서 뛰어놀았다고 하는데, 이 나무는 언제부터 유명해졌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나무 아래에서 쉬며, 위로와 혜안을 얻고 갔을까?’ 등의 생각들이 오갔다. 

그리고 도착한 생각의 지점은 ‘어떻게 천년을 버텼을까?’이다. 그전 직장에 21년을 몸담았었다. 20여 년도 사실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일하는 중간에 몇 번이나 위기가 왔었다. 퇴직 후 1년이 되어간다. 자유로운 삶이 마냥 행복하기도 했지만 너무 많은 기회와 배울 것이 많은 세상에서 피곤할 때도 있다. 수많은 정보를 잘 분별하여 선택하지 않고서는 몸과 맘은 더 피폐해질 수 있다. 

‘100세 시대 남은 수년을 어떻게 나답게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많은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긴 여생이 늘 힘차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인지하며 주저앉고 싶기도 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길을 포기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면서 다시금 겸허해진다. 천년 동안 수많은 계절을 지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바람과 기온을 맞이하며 위기를 겪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희로애락의 이야기들을 가진 사람들을 품어왔을까 하는. 그 짧은 아름다움을 발하기 위해 버텨왔던 오랜 세월이 지금의 유명세를 낳고,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져있다. 기술은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줄 것이다. 한 직장에 머무는 기간이 줄어들고 있으며, 그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가고 일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대신 해 줄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그것의 부정적인 면만 주목하고 두려워하기보다 긍정적인 면을 기억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전에 덧입어 우리에게 주어진 기나긴 시간을 인간에게만 허락된 창의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변화는 늘 있어왔다. 이 시기에 유연하게 잘 버텨야 한다. 천년의 은행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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