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미술 선생님의 귀환
[문화칼럼] 미술 선생님의 귀환
  • 전영철
  • 승인 2021.11.28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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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철 [원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전영철 [원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옛날 학교 식당이 있었던 옛 원주여고 미담관 2층, 방금 화실에서 표구를 마치고 온듯한 추상과 한국적인 색채, 오방색, 불상, 성황당, 새 등의 유화작품 500호에 이르는 대형작 수십점이 전시를 위한 가벽에 자리잡았다. 방금 화가가 막 작업을 끝낸 듯한 작품은 최소 15년 전후의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는 원주미술협회와 제자로 최홍원미학연구소를 이끌고 계신 양현숙화가, 김병호교수, 박종수 전 시립박물관장, 그리고 평소 선생님의 미학세계를 존중하고 따랐던 많은 후배화가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원주에서 흔히들 재야작가라고 일컬었던 한국 화단의 한 획을 그으셨던 화가 고 최홍원선생님. 평안도 정주출신으로 김소월, 백석, 이중섭 등 내놓으라하는 이시대 한국 예술가들의 후배였던 선생님. 국립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전쟁 통에 홀로 남하하셔 평생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가족을 그리워하셨다는 선생님은 어쩌면 고독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세계는 왠지 모르는 슬픔에 쌓여 있는지 모른다. 같은 반도의 땅에 있으면서 디아스포라를 가진 선생님은 유달리 새(鳥)를 표현하는 작품이 많았는데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존재에 본인의 슬픔을 담았을 것이라 말한다.

지난 1995년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펜화전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쓰셨던 작품세계에 대한 글에서 “전쟁과 폐허, 이념의 극한 대립 속에서도 나를 유지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림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린다는 것에 대한 여러 조건들이 열악했던 혼란의 시대였던 만큼 펜화는 무엇보다도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비교적 적게 받았으므로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볼 때 가장 적절한 표현 수단 중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거창한 시대적 평가나, 화가로서의 직업의식에 구애됨이 없이 단지 그린다는 것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화가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5월 원주문화원에서 마지막 전시를 하셨다.

지역미술계에서는 이미 학교를 옮기실때마다 춘천, 강릉, 속초, 원주미협을 창립하셨다는 선생님은 어쩌면 강원미술계의 산증인이셨던 것이다. 평소 베토벤과 모차르트 음악을 즐겨 들으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작품의 서명에 항상 불기를 표시하셨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사고의 깊이와 스펙트럼이 넓으셨는지를 반증한다.

지역미술계에서는 이미 많은 분이 선생님이 오로지 작품활동에만 용왕매진하셨던 말 그대로 작가정신에 투철했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미술작업을 통해 영감을 주고자 했던 선생님으로 남아있으시다고 하신다. 1994년 횡성여고에서 교편을 놓으시고 퇴직한 선생님은 남부시장 치악맨션 한편에 아틀리에를 만드시고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하루에 두세 작품을 하실 정도로 창작의욕이 뛰어나셨고 그 흔적은 아틀리에에 그대로 남아있으셨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사모님 혼자서 작품과 아틀리에를 지키시다 힘에 부치셨다고 한다. 그래 후배들에게 원주시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원주시 문화예술과와 시립박물관 그리고 원주미협 회원들의 도움으로 작품은 다시금 빛을 볼 수 있었다. 아주 무더웠던 지난여름 후배들은 선배작가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작업실과 작품을 옮기셨다.

올해 초 재단 대표로 취임할 때 인터뷰를 오신 모 신문사 부장님으로부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가을 재단이 옛 원주여고로 이사하면 꼭 선생님의 추모전을 기획전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원주미협 회원분들의 도움으로 시민 앞에 한 작가의 서사가 얽힌 작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제주 오름의 바람과 갈대와 파도를 사진에 담고자 했던 김영갑 선생이 있었다면 원주에서는 평생 디아스포라의 한을 새와 불상, 서낭당에 녹여 그려내었던 진정한 미술가 최홍원 선생의 작가정신을 만날 수 있다. 아뜰리에는 미담관 1층에 그 모습대로 재현해 내었고, 2층에서는 11월 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한 달간 ‘베토벤 목에 걸린 염주’라는 전시 제목으로 관람객을 만난다. 그리고 최홍원 작가의 모든 것을 대하게 될 온라인미술관도 문을 열었다.

원주라는 중앙에서 보면 다소 변방이었을 그리고 자연이 있어 본인의 외로움을 자연 속에 떨쳐버리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갔을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면 11월 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원주복합문화교육센터 #ACP로 오세요. 깊은 예술의 울림이 님을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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