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수평을 이루는 힘
[세상의 자막들] 수평을 이루는 힘
  • 임영석
  • 승인 2021.12.05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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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평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물을 담는 그릇은 그 그릇의 깊이가 수평의 기준이 될 것이고, 출렁이는 바다에 떠가는 배는 바다에 묻혀 있는 평행수의 깊이가 기준이 될 것이며, 비탈진 산의 나무들은 나무의 뿌리가 수평의 기준이 될 것이다. 수평(水平)이란 말 그대로 지구의 중력과 직각을 이루는 방향이나 평평한 상태를 말한다. 이 중심의 힘이 우리가 말하는 힘의 균형이다. 이 균형의 무너지면 아무리 단단한 건물도 무너지고 파괴된다.

이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그 걸음의 폭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내가 어릴 때 시를 써 보라고 권유했던 선생님께서 일 년에 한 번은 서울의 거리에 가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틈에 걸어보라는 말을 했다. 너의 삶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사람들 틈에 끼어 걸어보면 삶의 깊이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4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그 의미를 생각해 보니 무엇을 쫓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가름할 수 있는 것 같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걸음은 힘든 줄도 모르고 종종걸음을 치며 살아간다. 말 그대로 무의식 속에 몸이 움직여 바쁜 걸음을 스스로 재촉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걸음을 내 삶의 걸음과 비교해 보면 내 삶의 속도가 보이는 것이다.

수평의 균형은 흔들리고 요동치는 힘을 잘 받아낼 줄 알아야 한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면 삶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운동선수는 반복된 연습과 노력을 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제때에 씨를 뿌리고 가꿀 줄 안다. 건강한 사람은 일상의 생활이 모두 건강한 생각과 행동을 통해 지켜진다.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물을 끓이는 솥도 불길을 잡아주는 아궁이가 있어 가능한 것이고, 뜨겁게 몸을 달구어도 그것을 이겨내는 단단한 바닥이 있어 물을 끓여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수평의 균형이 깨지면 지진이 일어난다. 가을 나무들이 나뭇잎을 다 떨구어 내는 일도 자신의 생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잎을 떨구어 내지 않으면 춥고 긴 겨울을 날 수가 없다. 활엽수의 나무들은 넓은 잎을 통해 햇빛을 받아내는 일을 하지만, 뾰족한 침엽수는 일 년 내내 뾰족한 잎으로 햇빛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삶의 수평의 균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들 일상생활에서 삶의 에너지들의 대부분은 수평의 균형 속에서 만들어진다. 바람개비를 예를 들어보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앞으로 달려가면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이때 속도가 바람개비의 수평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앞이 안 보이고 어디로 걸어야 할지 방향을 모를 때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을 쓴다. 수평의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이 수평보다는 수직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너무나 많다. 그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시 한 편을 읽어 본다.

수직이 아니라 수평을 생각하면 / 세상은 엄청 크고 다양하고 넓어지는데 / 자꾸 수직으로만 줄을 서라고 한다 // 나름 괜찮은 대학에 갈 비율은 / 한 반에 대략 10퍼센트인데 / 그럼 90퍼센트의 인생은 뭐란 말이지? // 열 명 중 아홉 명을 / 한 명의 들러리로 만들면서 / 이런 수직이 공정하다고,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 김선우 시 「수평과 수직 1 –성적표」 전문

우리들 삶은 수평의 균형은 생각하지 않고 높이 오르는 일에만 치중하며 살아간다. 넓은 양식을 가슴에 쌓기보다는 명예만 좇아 살아간다. 좋은 대학만 나오면 인생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높이 오르는 일은 완성했는지 모르나, 앞으로 나가야 하는 수평의 길은 바라보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자기 무게 중심을 지켜내는 일은 수평의 균형을 지켜내야 가능하다. 역도선수가 무거운 바벨의 무게를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해 수평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더 많은 땀을 흘리는 것처럼 인생이란 그릇도 그 깊이가 수평을 이겨내는 힘을 가져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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