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묵은 해, 새해의 길목에서
[세상의 자막들] 묵은 해, 새해의 길목에서
  • 임영석
  • 승인 2022.01.02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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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2021년, 한 해를 뒤돌아보니 그래도 ‘무탈(無頉) 하게 잘 살았다’라는 답을 내놓을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글을 읽고 시를 쓰는 일이 경제적으로는 아무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살았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첫째는 건강을 잃지 않고 지냈고, 둘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고, 셋째는 내 가정에 소소하나마 즐거운 일이 몇 가지 있었다는 것이 행복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것들은 덤으로 나에게 찾아온 행복들이다. 

글을 쓰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어느 분은 좋은 글 많이 쓰라고 명품은 아니더라도 펜을 사서 보내기도 하고, 건강이 최고라며 몸에 좋은 것을 보내주기도 하고, 자기 고장의 맛있는 특산품이라며 마음의 정이 넘쳐났다. 옛날 같으면 찾아가 밥이라도 먹으며 담소를 즐겼을 것인데, 그런 시간이 제한적이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께서 마음의 정을 보내왔던 한 해였다. 그리고 종종 잘 있느냐며 안부를 주고받았던 분들 때문에 더더욱 행복했다. 

올해도 참 많은 시를 읽었다. 그리고 많은 시들을 읽고 내 마음을 담아 많은 분들께 보내주었다. 시 메일로 250여 편의 시를 배달했고, 원주 교차로에 45편 가까이 시해설을 써 게재를 했다. 나는 내가 하는 시 해설에 항상 자부심을 느낀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함부로 덤빌 수 없는 일들이다. 내 가정이 무탈해야 하고, 내 건강이 무탈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무탈함을 지켜내는 일이 내 일과 중, 가장 큰 일이다. 

올해 내가 받은 편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서정춘 시인이 써 보낸 친필 나의 시조다. 서정춘 선생께 시조집 『참맛』을 보내드렸는데 선생께서 원고지에 친필로 감사의 마음을 적어 보낸 것이다. 자신의 시를 읽고 맘에 드는 시를 골라 친필로 답을 해 주는 마음, 서로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많은 시인들의 시집을 받고 내가 내 삶의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누리지 못하는 일이다.

올해도 400여 권의 책을 읽은 것 같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광덕 동시집 『맑은 날』, 이혜선 시집 『흘린 술이 반이다』, 잉어촌문학회 『잉어촌 35집』, 강외석 평론집 『들길의 소리들』 등등 많은 저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은 오로지 코로나19라는 것이 내게 준 선물이기도 하다. 집에 처박혀 책만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임기응변(臨機應變)이란 말이 있다. 그때그때 처한 사태에 따라 그 자리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 임기응변에도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기응변에 강해지려면 평소 삶의 습관이 중요하다. 몸을 단련하고, 정신을 수양하고, 지식을 쌓고, 많은 이들의 경험을 축적해 두어야 그때그때 처한 일들을 대처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말한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평소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축적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오는 일이다. 손님이 많을 때 손님이 없을 것을 대비하는 저축을 해 두어야 하고, 사용하는 물품이 없을 때를 대비해 적정 재고를 항상 비축해 두는 것이 임기응변을 대처하는 일 중 가장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저수지나 댐을 보며 많은 물들을 가두는 일은 가뭄이 들 때 사용하기 위한 일이다. 그런 저수지를 항상 우리 마음속에도 하나쯤은 있어야 마음의 가뭄이 들 때 항상 사용할 수가 있다. 아무런 대처도 해 놓지 않으면 무탈하게 그 가뭄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인생이라는 게 딱히 큰 재주가 없어도 상식적인 생활 습관만 유지하고 지켜 가면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런 삶의 시간을 허형만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우리 삶은 항상 갯벌의 참꼬막처럼 진흙 바닥에 뒹굴며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참꼬막은 바다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진흙 갯벌의 삶을 살아간다고 자신의 몸에 한 줄 한 줄 그 마음의 줄을 새기며 산다. 무탈해야 자기 삶의 시간을 나이테처럼 그려낼 수 있다. 사람의 나이테인 주름도 참꼬막의 주름처럼 무탈하게 잘 살았다는 삶의 표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을 무탈하게 잘 살아온 삶의 지도이리라. 2022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탈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라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사람과 사람이 손을 잡고 어디에서나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꼬막 껍질에 새겨진 / 파도의 무늬 / 그 사이사이 숨겨진 / 푸른 별 자국 / 개펄처럼 부드러운 / 물결 피부 / 서서히 스며든 / 투명한 시간 // 모든 역사는 시간의 무늬다

▲허형만 시 「시간의 무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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