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멸공(滅共)에 대해
[세상의 자막들] 멸공(滅共)에 대해
  • 임영석
  • 승인 2022.01.16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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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2022년 새해 벽두부터 우리들에게 화두처럼 던져진 것은 반공(反共)이라는 이데올로기(ideologie)다. 그 의미를 알고 되짚어 보아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하여 이 글을 쓴다.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원상 이데아(idea)와 로직(logik)이라는 두 개의 의미소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데아(idea)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이데아는 인간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 지각 작용을 시행하여 그 결과로 인간의 인식능력 속에 구성된 추상적 관념을 의미한다. 또한 이 단어는 이상적인 것, 완전에 가까운 것, 바람직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곧 불완전한 현실과는 다른 이상화된 추상적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로직(logik)은 어떤 대상에 대한 과학적, 논리적 체계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현실보다 더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추상적 관념의 체계라 할 수 있다.」*라고 정의를 한다. 또한 반공(反共)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한자어다. 

이 반공(反共)이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던 것은 광복이 된 후,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어 6·25를 겪고, 그 후에 태어난 세대들에게 국가에서 안보 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사상교육이었다. ‘반공 방첩, 간첩 신고는 113’ 등의 문구나 캠페인 포스터가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었다. 아침에 산에서 낯선 사람이 내려오거나, 선글라스를 끼었다거나, 지역 사투리가 아닌 낯선 언어를 사용하면 간첩 용의자일 수도 있으니 신고를 하라는 등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특히 강원도는 북한과 접경지대였기 때문에 무장 공비들이 자주 출연을 하여, 1968년 채 열 살도 안 된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다”라는 말을 했다고 입을 찢어 살해됐다는 보도가 대서특필이 되었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다. 그만큼 당시 반공은 남과 북의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어 신병 훈련소에서나 받는 제식훈련, 총검술 등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독일 베를린의 장벽이 1989년 무너지면서 반공이라는 이념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또다시 모기업의 총수가 SNS에 멸공(滅共)이라는 문구를 올리고, 정치인이 멸치와 콩의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멸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겪지 않은 세대들에게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남과 북의 대치 국면을 정치적으로 악용을 해온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정치인이 반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다시 전쟁하겠다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애국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젊었을 당시에는 국방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군대 생활을 할 때 신체적 결함 때문에 군대를 면제받았다는데, 지금 건강하게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라 말한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의 고리가 풀리고, 자본시장이 세상을 지배하고 국가의 안보도 국민이 잘살고 행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평화를 구축하기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 그 자체는 모두가 멸망을 부르는 손짓이다. 따라서 지금 멸공(滅共)이나 반공(反共)이라는 말이 표현의 자유인지는 몰라도 행여나 전쟁을 유추할 수 있는 말로 들려 또 다른 이념의 장을 만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본시장은 전쟁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우리가 남과 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북에서 핵미사일 실험만 해도 자본시장이 흔들려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그 피해는 바로 국민의 삶과 연결이 된다. 더 바람직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목적이다. 반공이라는 말이 지금 시점에 우리들에게 어떤 삶의 목적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과거 적대적 이념 관계의 시대에 필요한 말이었겠지만, 지금은 평화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의 목적에 어긋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래 시를 읽으면 왜 통일이 우리들 마음을 비껴가는지 잘 알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이념은 반공(反共)이나 멸공(滅共)이 아니라 평화(平和)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새마을호는 아주 빨리 온다 / 무궁화호도 빨리 온다 / 통일호는 늦게 온다 / 비둘기호는 더 늦게 온다 / 새마을호 무궁화호는 호화 도시역만 선다 / 통일호 비둘기호는 없는 사람만 탄다 / 새마을호는 작은 도시역을 비웃으며 / 통일호를 앞질러 달린다 / 무궁화호는 시골역을 비웃으며 / 비둘호를 앞질러 달린다 / 통일쯤이야 연착을 하든지 말든지 / 평화쯤이야 오든지 말든지

▲백무산 시 「기차를 기다리며」전문

『문학과 이데올로기』〈2007 학림학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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