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코로나19 ‘고독의 섬’에서 맞이한 갸르릉테라피
[비로봉에서] 코로나19 ‘고독의 섬’에서 맞이한 갸르릉테라피
  • 심규정
  • 승인 2022.02.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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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지난 설날 연휴 고양이를 입양했다. 가족과 함께 다종다양한 고양이를 둘러보던 중 ‘고양이계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3개월 된 암컷 페르시안에 눈이 꽂혔다. 묘하게도 머리, 등, 꼬리 윗부분은 베이지색과 흰색이, 아랫부분은 모두 흰색이어서 우미한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딸의 가슴팍에 찰싹 달라붙어 바들바들 떨며 눈말로 ‘저 좀 데려가 주세요’라고 애잔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하늘이 점지한 운명의 파트너’라고 되뇌었다. 

고양이를 입양하게 된 것은 딸의 끓질 긴 압력(?)도 작용했지만, 중년의 끝자락에서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백신이 필요해서다. 항구로부터 미세하게 멀어져 가는 배처럼 차츰 우리 부부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아들(25)과 딸(19), 특히나 요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될 수 있으면 타인과의 만남을 자제하면서 고독의 냉기를 느끼던 터였다.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작명은 로지(lodge, 오두막). 잠시 쉴 수 있는, 내 마음의 안식처란 뜻이다. 이 정도면 작명 센스가 돋보이지 않는가. 고양이를 집에 들이고 나자,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상황은 이랬다. 장난감 낚싯대의 미끼를 잡기 위해 앞발로 입질하듯 몇 차례 툭툭 터치하거나 사람처럼 배를 드러내 놓고 갸르릉대며 달콤한 오수(午睡)를 즐기거나, 귀엽다고 잡으려고 하면 마치 ‘메롱’하고 쏜살같이 달아나거나, 일부러 가슴을 간질이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적대적인 하악질까지 하는 고양이의 묘미에 푹 빠지는 시간이 많아졌다.

배꼽이 빠져라고 박장대소를 터트린 게 아마 결혼 이후 처음이란 게 마나님의 전언이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 수변공원에서 걷기운동을 할 때면 들려오는 길고양이들의 아기 울음소리 같은 야옹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렸지만, 이젠 아이의 투정 소리로 다가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음악, 다산, 삶의 쾌락을 관장하는 바스테트(Bastet) 여신의 화신으로 여기며 숭배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낳은 천재적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소설 「문명」에는 ‘갸르릉테라피’(골골송)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야기는 전염병으로 수십억 명이 사망하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인류 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 나가는 암고양이 바스테트의 성장 과정을 알레고리로 삼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 고양이의 갸르릉소리에서 나오는 20~50㎐ 저주파 파동에 진정 효과가 있으며…. 또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수면의 질을 높이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유도한다…. 특히 장시간의 비행기 탑승 후 느끼는 피로감에서 빨리 회복하게 도와준다…. 우리 몸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심신의 안정에 도움을 준다…. 요양원들 또한 갸르릉테라피를 환자 치료에 도입하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갸르릉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현대병이라고 불리는 고독은 죽음을 부르는 무서운 병이다. 고독사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건이다. 코로나19가 우리를 전방위로 더욱 옥죄고 있는 요즘, 고양이를 비롯한 애완동물을 ‘고독의 테라피’로 삼는 것도 험난한 세파를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어스름이 회색으로 변해가는 시간. 컴퓨터 모니터와 좌판 사이에 낮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고양이가 갸르릉 갸르릉 거리고 있다. 속도감 있는 좌판 소리와 함께 이야기의 고랑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정말 리듬감 있는 상쾌한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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