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봄날이다. 희망을 싹틔우자
[세상의 자막들] 봄날이다. 희망을 싹틔우자
  • 임영석
  • 승인 2022.04.0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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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나는 봄과 인연이 참 많은 사람이다. 태어난 달도 음력 2월이니 봄을 맞는 달이고, 시인으로 등단을 한 것도 봄호에 등단했다. 그러니 봄은 나에게 희망을 싹틔우는 계절이었다. 봄은 많은 것을 내게 선물을 해 준다. 눈과 귀를 호강하게 해 주고, 웅크려 있던 몸을 활짝 펴게 해 준다. 세상에 그 어떤 선물이 눈과 귀를 호강시켜 줄 것이며, 웅크렸던 몸을 활짝 펴게 해 주는가. 봄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선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

봄은 희망을 만들어 준다. 활짝 핀 꽃들의 아름다움도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땅속에 숨은 온갖 미물들이 땅 위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허영자 시인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잡초를 뽑노라면 / 하느님은 높은 하늘보다 / 낮고 낮은 땅 아래 / 더 오래 머무시는 것 같애. // 사람이 씨 뿌리지 않고 / 물 주어 가꾸지 않아도 / 무성히 우거지는 / 뽑아도 뽑아도 돋아나는 잡초 // 땅 아래서 이루어지는 / 생명의 신비 / 창조의 신화 / 잡초는 하느님이 지으시는 농사 // 교황께서 몸을 굽혀 / 낮은 땅에 입맞추시는 까닭을 / 너무 잘 알 것 같애 / 잡초를 뽑노라면

 ▲허영자 시 「잡초를 뽑으며」 전문

우리가 계절이 아무리 춥다고 봄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봄이라는 계절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가 없다. 물론 남극이나 북극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선명하지 않다. 사계절을 선명하게 느끼고 살아가는 이 현실만 놓고 보면 참 행복한 나라에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밭두렁 논두렁을 걸어 봄을 맞으러 나갔었다. 벌써 논두렁 밭두렁에는 많은 풀꽃들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아지랑이는 옛날처럼 가물거리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지 않지만, 땅의 온기를 느끼며 봄을 맞는 내 발걸음이 사뭇 가벼웠다.

나는 봄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봄이라는 말은 희망의 대명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봄은 허영자 시인의 시 「잡초를 뽑으며」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않고 낮고 낮은 땅 아래에 계시기 때문에 잡초들이 뽑아도 뽑아도 솟아나는 것이라 했다. 희망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생명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그 희망의 출발선이 봄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도 봄은 작은 희망 하나쯤 바라보고 꿈꾸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교황도 땅에 입맞춤하신다고 허영자 시인은 믿고 계신다.

봄이 되면 돌도 흔들어 잠을 깨운다고 했다. 그 돌에 이끼가 붙고 햇살이 쌓이고 새소리가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봄을 노래할 때 봄의 활기찬 모습을 빼놓지 않고 담는다. 봄이라는 말에는 그 어원이 ‘바라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느낌이다. 〈보다〉를 한 글자로 줄이다 보면 〈봄〉이 된다. 내가 너를 보다, 내가 너를 바라보다. 그러니 봄은 어떤 바라보는 대상을 내게 선물해 주는 계절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어떤 시인은 봄의 꽃들이 실업난을 극복해 준다고 말했고, 어떤 시인은 봄 날씨는 따뜻한 정치가라고 말하고, 어느 시인은 아이들의 모습이 봄이라 말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참 많은 시인들이 봄이라는 그릇에 담았다. 봄이라는 그릇은 아무리 많은 것을 담아도 깨지지 않는다. 그 많은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어도 봄이라는 그릇 밖으로는 흘러넘치지 않는다. 내가 읽은 봄이라는 주제의 시만 해도 수백 편이 넘는다. 그러니 봄이라는 계절은 우리 인생에서 소풍길 같은 느낌을 준다. 내 몸을 키우던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나누었던 젊은 시절,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던 시절, 직장을 은퇴하고 맞는 노년의 시절, 그 어느 대목에서 바라보아도 봄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봄이 되어도 희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전쟁에 시달리고, 가난에 시달리고, 병마에 시달리고, 차별에 시달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봄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슴에 담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봄은 그 고통받는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따뜻한 봄이 찾아와 희망을 싹틔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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