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꽃이라는 기호(記號) 앞에서
[세상의 자막들] 꽃이라는 기호(記號) 앞에서
  • 임영석
  • 승인 2022.04.17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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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꽃의 기호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 기호들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어떤 마음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지 각자의 몫이 되겠지만, 꽃은 이미 제 기호에 대한 의미를 아름다움이란 말로 풀어 놓고 있다. 나는 이런 꽃의 기호들이 전해주는 마음을 헤아려 본다. 활짝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마음을 갖는다. 민들레는 민들레이고, 개나리는 개나리이고, 진달래는 진달래이고, 벚꽃은 벚꽃으로, 목련은 목련으로 그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성찰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 자태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람도 이런 꽃의 아름다움을 보며 자신이 어떤 마음의 꽃을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이란 마음속에 지녔던 본 모습을 의미한다. 나무가 본래 모습이 불이었는지, 아니면 물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를 내보이는 마음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본래면목의 마음이 보인다.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피면 불길을 향한 마음으로 보일 것이고, 나룻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면 물길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나무의 특성이다. 나무란 사람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본래면목의 모습을 지니지만, 그 이전까지 생명을 스스로 품고 있기까지는 꽃을 피워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꽃이라는 기호들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꽃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수만 가지 꽃들이 세상에 피어난다. 장미가 가시를 지닌 것은 제 아름다움의 꽃을 꺾어가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고, 복수초꽃이나 민들레가 다른 풀이나 나무들이 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는 것은 햇볕 한 줌 그늘이 들어서기 전에 씨앗을 남겨야 하는 절박함을 이겨내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꽃을 보면 그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삶의 방법이 보인다. 꽃이 피고 잎을 피우는 것이 봄꽃의 특징이다. 여름꽃은 잎이 피고 꽃을 피운다. 그 본래면목의 자세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 다 다르다.

이런 꽃의 기호들을 읽어내는 시인들의 마음도 그 모습이 수천 가지가 넘는다. 어느 시인은 여의도 벚꽃이 피어 있는 일주일 동안 실업자가 줄었다고 했다. 춘상객들을 상대로 노점상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라 했고, 어느 시인은 벚꽃 십리가 뱀이 기어가는 모습이라 했다. 제각각 읽어내는 꽃의 기호들을 보면 그 사람의 본연의 마음에 깃든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든 부처를 믿든 마음에 깃든 본래면목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들이다. 

십리에 걸처 슬픈 뱀 한 마리가 / 혼자서 간다 // 내가 얼마나 어두운지 /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려고 / 저 벚꽃 피었다 // 저 벚꽃 논다 // 환한 벚꽃의 어둠 / 벚꽃의 독설 //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 내가 얼마나 불온한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진다 

▲손수미 시 「벚꽃 십리」 전문

요즘 어디를 가나 벚꽃 십리는 보통 이어지고 있다. 온 길이 벚꽃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로수로 심어져 오는 나무들의 이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처음 6.25 후에는 미루나무를 심었고, 버즘나무(플라다나스), 은행나무, 벚꽃 등의 순서로 가로수가 심어져 우리들의 삶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미루나무는 잘 자라고 속성으로 심어졌으나 나무의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베어지고, 나무가 단단하다는 플라다나스를 심었는데, 이는 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가 문제로 베어졌다. 은행나무도 가을에 은행의 냄새 때문에 또 베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벚꽃나무 등이 심어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의 변화되는 모습만큼 본래면목의 마음 자세도 많이 변화되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마음에 깃든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봄이 되면 꽃길을 걷고 싶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의 길을 걷고 싶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물든 길을 걷고 싶고, 겨울이 되면 하얀 눈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본래면목으로 깃들어 있다. 그러니 사람도 아름다운 길을 찾아다니는 마음의 궁핍을 채워가는 벌과 나비 떼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수만 송이 벚꽃을 보고 나는 누가 저렇게 많은 〈벚꽃 도장을 찍어 주었을까〉라며 「벚꽃 도장」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아이들이 숙제해 가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라며 꽃 도장을 찍어준다. 지금 온 세상은 하늘에서 꽃을 피워 자연의 모습을 보며 기나긴 겨울 잘 이겨내고 잘 견디어 주어 착하다고 꽃 도장을 찍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니 꽃들도 제 모습을 잘 보여주기 위해 마음속에 간직한 제 삶의 기호를 통해 본래면목의 그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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