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언어의 곡예사’ 이광재, 땀 이야기 그만하라
[비로봉에서] ‘언어의 곡예사’ 이광재, 땀 이야기 그만하라
  • 심규정
  • 승인 2022.04.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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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선거의 달인’ 이광재 강원도지사 후보에게 ‘땀’은 전매특허나 다름없다. 유권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정교한 청사진을 제시해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수사는 아주 중요하다. 그는 선거 때마다 해당 선거구를 “땀으로 적시겠다”라고 강조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발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니 모두 그의 메시지에 꽂힐 수밖에 없다. 

지난달 26일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이광재 도지사 후보의 출마 기자회견은 언어유희의 축제장 같았다. 무려 4,521자(공백 제외)에 달하는 출마선언문에는 온갖 수사가 꿈틀대고 있다. 되짚어 보자. ‘강원도의 성과가 시범학교가 되어 전국에 퍼져나가게 하겠습니다’,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 군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습니다’, 특히 ‘영동권을 바다가 있는 스위스로 만들겠습니다’라는 말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또 ‘강원도 일자리 주식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신바람 나는 디지털 경로당을 만들겠습니다’, ‘강원도에 협치의 다리를 놓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언어의 유창함을 넘어 호소력 짙은 화려한 수사는 또 있다, ‘내 삶을 바꾸는 도지사’. ‘효도하는 도지사’라고 밝힌 그는 클라이맥스에서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강원도를 땀으로 적시겠습니다”라고.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땀 이야기는 도돌이표처럼 따라 붙는다. 지난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태백, 영월, 평창, 정선을 땀으로 적시겠다”라고 했다. 

5회 지방선거에서 40대 도지사 시대를 화려하게 연 그는 선거 과정에서 역시 “강원도를 땀으로 적시겠다”라고 했다. 어디 이뿐인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피선거권이 박탈된 뒤 10여년만에 사면되어 지난 2020년 치러진 총선에서 재기에 성공한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클래스가 다른 원주를 보여주겠습니다”라며 “원주시를 땀으로 적시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보면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이다”라고 강조한 에디슨 신봉자처럼 보였다.  

이런 그의 정치 궤적을 지켜본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땀의 크기는 성과에 비례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도지사, 국회의원 3선 하면서 그에게 보장된 임기는 총 16년이다. 그러나 그가 채운 임기는 9년에 불과하다. 17대 국회의원 4년, 도지사 출마에 따른 사퇴로 18대 국회의원 2년, 그리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되어 물러남에 따라 그간 수행한 도지사 7개월, 이번 21대 국회의원 2년 여. 이러니 그의 땀의 질량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시민들은 그가 야심의 크기를 제시하며 현란한 언어유희를 통해 호의적 이미지를 극대화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면 탈진할 수 있다. “강원도를 땀으로 적시겠다”라는 장식적이고 현란한 언어의 곡예, 정치공학적인 처세 보다, 정직하고 묵직한 땀 한방울의 질량이 너무 아쉽다. 태산같은 위상에 걸맞는 믿음의 크기를 그에게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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