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뷔시와 라벨 작품의 공통점 >

비슷한 시대와 공간을 살던 작곡가로서 정서적으로 많은 부분이 비슷했던 드뷔시와 라벨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독일 낭만주의’음악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작곡의 재료들도 과거와는 다른 것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다. 

예컨대 전통적인 장·단조 음계보다는 선법(mode)을 선호했고, 물이나 햇빛 등 자연 현상에 매료되어 그것을 표현하려 했으며, 다른 나라의 춤곡 리듬을 차용했다는 점들이다.

이렇게 음악을 만드는 재료들이 비슷하다 보니 그들의 작품들은 비슷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당시의 프랑스 작곡가들 중 드뷔시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곡가들이 드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대학시절 구매한 클래식 음악 선집(選集)에 드뷔시와 라벨의 피아노곡 카세트테이프가 각각 3개씩 들어 있었는데, 솔직히 그땐 두 작곡가의 작품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듣는 사람에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 드뷔시와 라벨 작품의 차이점 >

이렇게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에 비슷한 점이 많다 보니, 항간에는 라벨을 “표절작곡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한 오명은 깨끗하게 씻어졌다. 두 작곡가의 작품 성향이 비슷한 만큼 다른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구조적인 면에서 확연히 다른 두 대가(大家)의 작품 성향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드뷔시의 음악은 전형적인 인상주의 화폭처럼 순간적인 감각과 모호한 표현을 즐겨 쓴 데 반하여 라벨은 윤곽이 또렷한 표현을 사용했으며, 드뷔시가 물이나 햇빛, 바람 등 자연이 주는 인상(impression)을 느낌대로 표현했다면 라벨은 그것을 음악 속의 한 언어로 나타냈다. 

또한 드뷔시는 전통적인 형식미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으며, 라벨은 고전적인 형식을 지키려 한 이른바 ‘신고전주의’ 작곡가이다. 대학시절 구매한 클래식 음악 선집에 들어 있던 라벨의 피아노 ‘소나티네’가 그 대표적인 예다. 

비록 선율의 재료가 되는 음계는 장·단조 음계의 틀을 많이 벗어난 형태지만, ‘소나타 형식’이라는 고전적인 틀에 충실한 작품이며 스페인 음악과 재즈의 영향도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다. 작곡가의 독특한 개성이 들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

오늘 소개할 라벨의 작품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 작품은 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오른팔을 부상당한 피아니스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을 위해 작곡됐는데, 그 난이도가 극심하여 ‘비스겐슈타인’ 자신도 연주를 주저할 정도였다고 한다. 

라벨도 전쟁에 참전했던 터라 전쟁의 와중에 부상당한 그에게 향했던 그 마음이 참으로 훈훈하고 아름답다. 당대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도 전쟁이 나면 참전하는 모습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질병이나 장애로 면제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군 면제가 되고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왕자들은 물론 나중에 여왕이 된 공주(엘리자베스 2세)까지도 참전하는 유럽과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곡의 난이도가 어려운 이유는 한 손으로만 연주하여 양손이 함께 하는 것처럼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왼손만으로 드넓은 피아노의 음역대를 모두 커버하려면, 손 크기의 제한 때문에 집단화음보다는 폭넓은 아르페지오가 주로 사용되는데, 그러한 이유로 매우 빠른 속도로 위아래 건반을 오가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왼손 하나만으로 연주하는데도 악보는 두 단으로 되어 있으며 32분음표는 기본이다. 

또한 단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러닝타임의 1/3 이상을 피아노 혼자 연주하는 카덴짜로 구성되어 있다. 협주곡이니만큼 오른손의 공백을 오케스트라의 도움으로 메워줬다면 좋았을텐데… 

https://youtu.be/CB4Wydl4d_s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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