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무엇이 소극행정을 유발하는가
[비로봉에서] 무엇이 소극행정을 유발하는가
  • 심규정
  • 승인 2022.06.1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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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요즘처럼 원주시 인허가 업무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또 있을까. 지난해 말부터인가. 건축, 농지, 개발행위 등 주요 인허가에 대한 불만불평이 쏟아진 걸로 기억된다. ‘갈등의 진원지’인 도시주택국 신속허가과는 건축, 산림, 농지 등 각 직렬별로 담당 공무원이 배치돼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설치됐다. 


원강수 원주시장직 인수위원회가 원주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분기별로 민원인이 건축인허가 접수 후 서류 보완율이 최대 78%인 것으로 파악됐다. 신속허가과를 ‘늑장허가과’라느니, ‘신속트집과’라느니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오죽했으면 원강수 시장 당선인까지 “부서 명칭에 ‘신속’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말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을까. 원성의 대상은 도시계획과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고 인허가 처리에 대한 쾌도양단식의 질타가 쏟아질 즈음인 지난 9일 감사원이 ‘지방자치단체 소극행정 실태 점검’이란 의미 있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지방자치단체 공직자의 적극적·능동적 업무수행이 긴요한 시점이나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공직문화 등으로 인해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소극적 업무 형태를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감사원이 밝힌 소극행정 유형 4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행정 편의적·관행적 처리다. 구체적인 의무가 없는 재량행위에서 공무원이 편한 방법으로 규정을 해석하여 처리하거나 불합리한 관행을 답습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업무·책임 전가다. 부서·기관 간 업무를 떠넘긴 채 처리하지 않거나 책임을 서로 회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규정 검토 소홀이다. 구체적인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부작위(不作爲) 및 직무태만이다. 부작위는 일정한 처분을 하여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을, 직무태만은 업무를 방치하거나 지연·게을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부서에 뼛속 깊이 박힌 늑장행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진단이다. 

무엇이 소극행정을 부추길까. 감사연구원이 지난 2019년 발표한 ‘적극행정 활성화 장애요인 분석자료’에 따르면 소극행정 유발요인으로는 개인적·제도적·조직적·환경적 요인으로 구분했다. 개인적 요인은 적극행정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사명감 부족, 보상에 대한 불만, 징계 우려, 소극행정에 대한 처벌 미비 등이, 제도적 요인은 행정 현실에 적용하기 불합리한 제도나 절차·법률, 새로운 행정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제도나 절차 등을 꼽았다. 

조직적 요인은 부서 간 갈등, 업무의 복잡성, 책임소재 모호, 순환보직에 따른 전문성 결여, 적극행정을 막는 내부 통제 운영, 지나친 형식주의를, 환경적 요인은 변화를 거부하는 공직문화, 지방의회 등의 행정통제 증가 등으로 진단했다. 담당 부서 직원과 직렬별 내부 목소리를 들어보면 구조적인 문제가 상존하고 있다. 워낙 말이 많고 민원이 끊이지 않다 보니 숙련된 직원들이 근무를 기피하고 있다. 부서의 ‘다중 숙련화’(multi-skilling)는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인허가를 패스트 트랙(신속처리)하고 책임행정을 구현할 수 있도록 인사상 인센티브 등 이심전심의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허가를 제때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출 이자 등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피해가 늘어나면 결국 지역경제 돈이 도는 건강한 선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하루, 이틀 늦어지면 속은 정말 숯검정이 된다” 최근 신문사를 찾아와 넋두리를 풀어놓은 한 사업자의 굵은 한숨 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연일 규제 혁파를 설파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발 빠른 적응력과 함께 구조적 변화가 공직사회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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