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과거는 묻지 말자
[살며 사랑하며] 과거는 묻지 말자
  • 임길자
  • 승인 2022.07.10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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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백일홍(시설에서 불러드리는 호칭)님은 2년 전 필자가 운영하는 재가노인복지시설에 단기로 입소했다. 당시 백일홍님의 건강 상태는 목욕 및 투약 관리에 대한 부분 도움이 필요할 뿐 일반적인 생활(자기 손으로 식사하기, 세수하기, 배변 관리 등)은 가능했다. 이 정도의 어르신을 가족들은 왜 시설에 모시려 했을까? 

먼저 주 보호자(큰 며느리)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가정환경을 소개한다. 백일홍님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고, 시설 이용 의뢰를 한 사람은 큰 며느리였다. 함께 동거하던 큰 며느리는 암(뇌종양) 환자다. 수술 후 몸도 맘도 휴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둘째 며느리는 배우자의 사업을 도우며 사는 환경인데 외아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두 며느리는 백일홍님과 남남이다. 배우자를 통해 가족으로 연결이 되긴 했지만 내면 깊숙이 살펴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과 남인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 전에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목숨을 걸지 않는다. 부모자식 간에는 서로를 위해 간도 쓸개도 상대가 필요하다면 조건도 아낌도 없이 떼어 내지만 남남은 다르다. 물론 이 세상엔 아주 가끔 특별한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의 내면 바탕은 그렇다는 것이다. 

백일홍님 자녀들의 입장은 이렇다. 큰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라 여기지만 지금은 아내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둘째 아들은 ‘자기 집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지만 어려운 가정사를 설명하며 힘들어했다. 일흔이 넘은 큰딸은 오래전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는데 건강 상태마저 좋지 않아서 오히려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막내딸은 자신이 벌어야 먹고사는 환경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누군가를 보살필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번엔 백일홍님의 하소연이다. 「나는 일찍 혼자가 되었어. 어려웠지만 사남매를 잘 키웠다고 생각해.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오랜 기간 혼자 살았지. 근데 넘어졌어. 어쩔 수 없이 큰 아들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가 아마 15년쯤 되는 것 같아. 어느 날부터 며느리가 머리가 아프다는 거야. 머릿속에 혹이 생겼다는데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아들이 말하더군. ‘집사람이 아프니까 얼마 동안 엄마가 다른 곳에 계셔야 할 것 같다’라고. 그리고 ‘집사람 병이 나으면 다시 함께 살자’라고. 그래서 경기도에 있는 어떤 시설에 들어가게 된 거지. 근데 거기는 교회에서 운영하나 봐. 매일 아침 기도를 하라는 거야. 그래서 아들에게 전화했지. ‘여기는 내가 살 곳이 아니다’라고. 얼마 후, 두 며느리가 좋은 곳을 찾았다고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이 여기야, 여기서 사는 거 괜찮아. 깨끗하고 사람들도 좋고 그래도 가끔 집은 가고 싶지. 여긴 집에서 다니는 노인들이 여럿 있잖아. 나도 집에서 그렇게 다니고 싶다는 거지. 내가 똥을 싸고 누워 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시설에서만) 살라고 해. 억울해서 자꾸 눈물이 나…」

이런 상태에서 거동이 서툰 아흔다섯의 어머니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모셔야 할까? 지난 2년간 시설장이 본 백일홍님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귀는 이미 문이 닫혔다. 자녀들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지만, 그들의 고단한 사정은 귀에 담기지 않는다. 수시로 자녀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 상처의 깊이만 더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며느리들을 몹쓸 사람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자녀들 간의 관계는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형제․자매의 성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위와 유사한 사례는 많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문제로 인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준비 없이 ‘노인이 문제’라는 범주(範疇)에 들어섰다. 금방 다가올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보이는 현상에 이끌려 오늘 일을 흐리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과거는 묻지 말자. 오늘을 바로 보고 가자. 내일은 오늘이 만든 결과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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