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공직사회 다면평가, 대수술 필요하다
[비로봉에서] 공직사회 다면평가, 대수술 필요하다
  • 심규정 기자
  • 승인 2022.07.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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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인]

공무원 A 씨는 최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자괴감과 열패감에 빠졌다. 사무관 승진 명단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근무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여유 있게 승진할 것으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우수수 추풍낙엽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실망했으면 사표까지 던지려고 했을까?”, “머릿속이 회의감으로 가득 찼을 것”이란 반응이 주변에서 나왔다. 

승진 발목을 잡은 것은 다면평가제도다. 다면평가는  5급(사무관) 승진을 앞둔 6급이 평가대상이다. 앞서 원주시는 지난달 말 승진 후보 51명(4배수)에 대해 평가를 진행한 바 있다. 평가를 통해 하위 25%를 무조건 배제했다.

이번 인사에서 9명이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A씨 처럼 아무리 근무 평가를 잘 받았다고 해도 다면평가에서 탈락(?)하면 승진할 수 없는 아주 살벌한 구조다. 그래서 승진 후보들은 다면평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면평가는 1인이 일방적으로 평가할 때 나타날 수 있는 ‘후광효과’, 혹은 ‘뿔 효과’(Horns effect, 하나의 단점으로 그 대상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 가혹화 경향 등의 평가오류를 개선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갑질을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상의하달식 공직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공직사회나 일반기업에서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 LG그룹이 최초로 도입한 이래, 삼성그룹, SK그룹, 포스코, 다음커뮤니케이션, 엔씨소프트 등의 기업들이 실행 중이다.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81.5%(44개)가 다면 평가를 성과상여금 지급과 승진, 보직 관리, 포상 등에 활용하고 있다는 게 중앙인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다. 

그러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더더욱 그렇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지역사회 특성상 의도적인 사감(私感)이 작용할 경우  애꿎은 공직자만 양산할 수 있다. 여기에  학연, 소지역주의가 다분히 작용할 수 있다. 원주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직원 가운데 부부 공무원·가족 공무원 비율(37%)이 아주 높다. 

평가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작업에 들어가 응징할 수 있다는 게 공직 내부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에서 다면평가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LG그룹 산하 LG경영연구소의 ‘다면 평가의 성공적인 도입 방안’이란 보고서는 주목할 만하다.

내용은 이렇다. “익명성을 빌미로 특정 개인에 대해 편향된 평가를 하거나, 부하들이 담합하여 특정 상사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집단 반란’ 현상이 나타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업무능력보다는 평소의 안면에 의해, 인기가 있는 대상자가 인기가 없는 대상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다면평가가 인기 투표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물론 다면평가를 통해 어울림과 소통을 잘하고, 발군의 리더쉽을 갖춘 승진 후보자를 가려낸다는 순기능도 있다. 

하지만 승진 길목에서 다면평가라는 커다란 장벽이 턱 하니 가로막고 있으니 승진 후보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부하직원들 눈치 보느라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잘못된 근무행태를 지적하거나 정당한 업무지시가 되레 여론몰이를 통해 낮은 평가로 유턴해 돌아온다는 것이다. 

평가방식도 애매하다. 최근 5년간 함께 근무한 직원 30명이 평가자다. 여기에 현 소속 부서 직원들은 배제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전력의 경우 현 소속 부서 50%, 전년도 소속 부서 30%, 2년 전 소속부서 20%의 비율로 평가자를 무작위로 선정하고 있다.  

이대로 다면평가가 지속된다면 그동안 노정된 팀워크 저해, 팀원 간의 불신 풍조 조장, 이로 인한 사기 저하, 위화감을 조성해 공직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이제 평가방식의 재설계를 통해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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