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폭염 한복판에서
[살며 사랑하며] 폭염 한복판에서
  • 임길자
  • 승인 2022.07.31 2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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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한낮 더위가 30도를 넘는 폭염으로 저소득층 노약자들의 고통은 매일 배가 되고 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무더위는 그냥 계절이 주는 환경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에어컨 바람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니 냉방병에 걸리기 쉽고, 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는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를 증가시키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는 최근 5년간 1만 395명, 이 가운데 99명이 사망했으며, 올해에도 5월부터 7월까지 800여 명의 온열질환 환자가 발생했고, 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열 질환을 피할 특별한 대처법이 뭐 있겠는가? 

한 전문의에 따르면 ‘체온이 40도 이상 올라가는 열사병의 경우 ‘빠르게 그늘로 이동하고, 옷은 헐렁하게, 몸은 눕혀주고, 다리를 들어 올려서 혈액순환을 돕고, 물을 조금씩 끼얹어 주는 것이 좋고, 위험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119 신고로 빠른 응급처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잦은 수분 섭취가 중요하고, 맥주나 커피 등은 이뇨작용을 일으켜 탈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피해야 한단다. 

이 엄청난 더위 앞에서도 백일홍(시설에 붙여드린 어르신의 예명)님은 겨울 내복을 입고 계신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는데도 말이다.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떨어보지만 오늘도 실패다. 결국 화를 내시며 당신 방으로 들어가신다. 

민들레님께선 오늘도 수없이 보따리를 쌓다 푼다. 오늘은 당신의 옷을 누군가 훔쳐 갔다고 화를 내셔서 온 방과 서랍 속을 확인해 보지만 옷은 나오지 않았다. 마침 민들레님의 며느리가 찾아와 산책을 나간 다음, 깔고 계셨던 이불 속에서 없어졌다던 옷을 찾았다. 산책에서 돌아온 민들레님께 잃어버렸다던 옷을 찾았다고 알리지만 어디서 찾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아마 좀 전에 있었던 사건 자체를 기억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젊었을 적 꿈이 가수였다는 해당화님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노래를 엄청 잘 부르신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해당화님의 노랫소리에 가까이 계신 들국화님은 오늘도 여전히 시끄럽다고 화를 내신다. 우리는 어르신들의 몸짓에서 이 계절이 뿜어내는 더위를 다양한 색깔로 경험하며 인생을 학습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배분되고 있는 이 무더위는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폭염에 대응하는 언어와 태도가 다르다. 어떤 이는 ‘살인적 더위’라고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다’라고 표현한다. 

또 어떤 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또 어떤 이는 ‘더우니 여름이라고... 여름엔 더워야 한다고...’ 저마다 내면에 품고 있는 언어로 현실을 포장하고, 오랜 기간 길들여진 습관대로 몸짓한다. 거울에 비춰진 얼굴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표정을 만들고, 맞닥뜨린 매일의 일상을 수습하며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담았다 녹였다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은자와 못 갖은자가 느끼는 계절 체험은 많이 다를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너나 할 것이 많이 힘들고 고단한 요즘이다. 뭐라도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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