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인간의 사망을 통제한다’는 픽션이 등장하는 서글픈 현실
[비로봉에서] ‘인간의 사망을 통제한다’는 픽션이 등장하는 서글픈 현실
  • 심규정
  • 승인 2022.08.21 2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실버 쓰나미가 예삿일이 아니다. 치솟는 고령화율, 이에 따른 유병률 증가, 여기에서 파생된 노노부양, 셀프부양까지. 100세 시대가 현실화하면서 노인부양문제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간병공포를 넘어 간병지옥이란 말이 따라붙으니 그 심각성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새뮤얼 샘은 반자전적 소설 「주의 성전」에서 노인을 대놓고 ‘안 반가운 영순위 환자’를 줄인 ‘안영자’라 칭했다. 점점 도타워지는 고령의 무게는 우리에게 영원한 숙제다. 

강원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강원도 인구변화 실태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전 지역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2021년 기준 고령화율을 보면 지역마다 많게는 31.09%에서 적게는 15.87%로 나타났다. 10년 전인 2011년 22.23%~11.29%보다 꽤 높아진 수치다. 통계청이 지난 5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오는 2050년 고령인구는 47.2%까지 가파르게 치솟아 2020년(20.0%)보다 13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까운 이웃인 일본을 빗대 ‘노인대국’이라느니, ‘인간의 노화에 관한 살아 있는 인류학 교과서’라느니, 수식어가 뒤따르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 고령자 천국이기 때문이다. 최근 접한 일본 작가 가키야 미우의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란 책을 펴 보기도 전에 제목만 보고 충격을 받았다. 너무 살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떻게 인간의 수명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인지,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플롯이란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물론 픽션이지만. 방점은 책 제목 중 ‘가결’이란 단어에 찍혀 있지 않을까 짐작하며 책 속에 빠져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정부 재정은 한정돼 있는데,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된다. 이런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대증요법으로 가결된 것이 바로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다. 시행까지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가족은 주인공인 50대 주부, 사망법안에 따라 2년 뒤 죽게 되는, 치매에 걸려 침대에 나사못처럼 박혀 있는 시어머니, 그리고 죽기 전에 세계여행을 가겠다며 조기 퇴직한 남편,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퇴사해 집에 누에고치처럼 갇혀 사는 아들, 직장에 다니느라 타지에 머무는 딸, 가족은 각자 삶에 치여 사실상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였다. 시어머니의 간병은 오롯이 며느리의 몫이다. 

그런데 아뿔사. 시어머니의 호출에 언제나 로봇처럼 고분고분하던 며느리가 어느 날 사고(?)를 친다. 갑자기 가출을 감행한 것. “왜 나만 이 고통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지?”, “이렇게 좋은 시절 다 가면 나도 70세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죽기 전에 나도….”라며 주인공은 집을 뛰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생활하게 된다.  

이때부터 작가의 작의(作意)가 엿보인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듯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은 끈끈한 유대감을 발휘해 각자 역할 분담을 하며 온 힘을 다해 할머니 간병에 나선다. 할머니의 건강도 점차 호전된다. 세대 연결로 갈등이 해결된 셈이다. ‘70세 사망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자, 법안은 결국 폐기된다. 이 소설은 고령사회의 굴곡과 그늘진 아우라를 통해 이를 해결해나가는 가족애를 그리고 있다.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뇌가 미세하게 점점 녹이 슨다고 한다. 이게 누적되면 나중에 치매라는 악령의 시나리오에 시달리게 된다. 장수가 축복이 아닌 불행의 씨앗이나 재앙처럼 받아들이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가 감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노인들의 고군분투는 우리의 미래에 그대로 뒤얽히고 중첩될 수밖에 없다. 치매의 위험인자인 고령은 ‘안영자’지만,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은 내 ‘삶의 모터’이자 ‘마음의 피난처’이자 ‘든든한 버팀목’인 끈끈한 가족애에 있음을 또렷이 깨닫는 하루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