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그리운 추석풍경들
[세상의 자막들] 그리운 추석풍경들
  • 임영석
  • 승인 2022.09.04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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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추석이란 풍습의 유래는 신라 제3대 왕 유리 이사금 때 서라벌 안에 있는 아녀자들을 두 공주로 하여금 파를 나누어 7월 15일 백중날부터 8월 15일 가윗날까지 삼 삼기를 겨뤄 가윗날(8월 15일) 푸짐한 음식을 내려 노래와 춤으로 즐기며 놀게 했다는 유례를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기록돼 있다. 그러니 추석은 노동의 휴식을 주는 휴가인 셈이다. 이 놀이문화가 바뀌어 추수감사의 의미로 발전을 했고, 조상에게 제를 올리고 어른들을 찾아뵙는 풍습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1949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다.

추석은 음력으로 달이 가장 밝다는 8월 15일이다. 중국에서는 중추절이라 하고, 동남아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도 추석을 보내지만, 공휴일로 지정한 곳은 중국과 한국 등 극히 일부 나라 뿐이다. 추석이란 이름도 ‘가배’라고 하여 가윗날, 한가위 등에서 ‘가위’로 남아 있어 길쌈놀이가 당대에 있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지만, 중국의 중추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게 현실적이다.

농경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전환이 되면서 지금처럼 교통 이동 수단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는 추석을 보내는 풍경이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다. 각 회사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을 지역에 따라 버스까지 대절해서 귀성길 지원에 나서고, 기차역에서는 추석 한 달 전부터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차표를 끊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온라인 예매가 있어 그러한 풍경이 연출되지 않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이동을 해도 날을 세울 정도였다. 모든 교통수단이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리고 추석을 보내는 모습도 집안마다, 고을마다, 지역마다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추석이 다가오면 그 마지막 오일장에는 추석 대목이라 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옷 장수, 신발 장수, 차례상에 올릴 제수음식 등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가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정육점이라야 큰 읍내에 한두 곳이 전부였고 또 냉장고가 없던 시기이니 고기를 보관할 곳이 없다 보니 추석 전에 마을 단위로 돼지를 잡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송편을 만드는 것도 햅쌀로 빚어 제를 올렸고, 노비 등에게 나누어 먹였다는 기록을 보면 추석은 일 년 중 농경사회에서 노동의 휴식을 취하는 날이 분명하다. 현대사회에 와서 추석 스트레스가 생겼고, 빈부의 격차로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 고향 산소에 있고 // 외톨배기 나는 / 서울에 있고 // 형과 누이들은 / 부산에 있는데, // 여비가 없으니 / 가지 못한다. //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 못하나? // 생각느니, 아,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 시 「小陵調-1970년 추석에」 전문

1970년 추석에 쓴 천상병 시인의 소릉조(小陵調)라는 시다. 소릉이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의 호다. 인간의 슬픔을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천상병 시인도 추석을 맞이하여 형과 누이들을 만나고 싶은데 여비가 없어 고향을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인생은 얼마나 깊고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는가를 짚어보는 시다. 이렇듯 경제적 여건으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많은 사람이 겪는 문제다. 뛰어오른 물가에, 차례를 준비하기 위한 마음이 녹록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만 해도 직장을 다닐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 그래도 인사치레도 하고 했지만, 은퇴를 하고 보니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게 변해 있다. 그래도 글이라도 써서 안부를 묻고, 마음의 인사를 나누는 정만큼은 아직 간직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다. 경제적으로야 옛날보다 지금이 아주 풍성하고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옛 추석 풍경이 사라져 아쉽다. 고향을 못 가는 사람, 가고 싶어도 남북의 차단된 벽에 그리움만 간직하고 지내야 하는 사람,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명절이 와도 외로움이 더 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뜻이다. 큰 달빛을 의미하는 한가위에 우리들 마음도 큰 달빛만큼 풍족해졌으면 좋겠다. 오고 가는 마음의 인사라도 온 세상을 덮고 덮어 스스로 우리들 삶의 수고스러움을 위로받고, 위로하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옛 풍습은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 한가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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