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복지사각지대
[살며 사랑하며] 복지사각지대
  • 임길자
  • 승인 2022.09.04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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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지난 2014년 2월에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10개월 뒤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및 ‘긴급복지 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은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에게 통합급여로 지급했던 기초생활보장비를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등으로 나눠 별도 기준에 따라 지급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현행보다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긴급복지 지원법’은 긴급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을 확대하고 대상 선정자에 대한 소득·금융재산 기준을 완화했다.

또 위기 발굴 시스템 점검과 신고의무 확대 근거를 명시해 지자체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은 정부가 단전·단수 가구 정보나 건강보험료 체납 가구 정보 등을 이용해 위기 가구를 발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 시행 7년 후, 지난달 21일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당시 시신이 심하게 부패된 것으로 보아 여러 날 방치된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수년간 암과 난치병 등 건강문제 및 생활고로 신음하다 죽음을 선택하며 A4용지 9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원주시도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의 위기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우선 전입신고를 하는 모든 가구에 복지정보를 미리 안내하고 읍·면·동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확대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또 위기 가구 발굴 홍보를 위한 전광판을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7개월간 송출·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법은 거의 완벽하다. 법대로만 하면 된다. 그동안 위기가정 돌봄 지원에 관한 많은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복지사각지대 예방을 위한 정책과 대책을 내놨지만, 잊혀질만 하면 사고가 발생하자, 이젠 시민들은 호들갑 떨며 내놓는 정책을 ‘구두선 행정’이 아니냐며 체념하는 분위기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서든 사고는 존재한다. 어디서든 넘어질 수 있고 다칠 수 있다. 더러는 천재지변으로 인해 불가항력(不可抗力)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가 거듭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건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에 무게중심이 기운다.

국민을 위한 일에 집중해야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불편을 살피지 않아 곳곳에서 불행한 상황이 생산되고 있다면 이를 어찌 복지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국가 예산의 쓰임을 놓고 필요와 불필요는 국민들이 판단한다. 치솟고 있는 장바구니 물가상승으로 시민들의 가정경제가 흔들리고 있는데 법치를 주장하느라 눈치도 없고 염치도 없는 국가지도층 인사들의 남 탓과 사정(査定) 정치로 나라 안이 시끄럽다. 잘 모르면 겸손하기라도 해야지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에서 했던 축사 일부를 옮긴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시길, 앞으로 살면서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 게 굴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무례와 혐오, 경쟁과 분열, 비교와 나태,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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