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세상의 자막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 임영석
  • 승인 2022.09.18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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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의 전령사 같다. 어찌 그렇게 때를 잘 알고 찾아오는지 귀뚜라미는 가을 문턱에서 어김없이 울어댄다. 마치 사람들에게 ‘귀 뚫어라, 귀 뚫어라’ 말을 하는 것처럼, 은유적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시인 묵객이라면 한 번쯤 이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세월 가는 모습을 유추해 보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되짚어보기도 한다. 그 뜨거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하더니 귀뚜라미가 울어대니 그런 날이 언제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서늘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이런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온 햇수가 62년이나 지났다. 스무 살이 넘어야 주어지는 투표권을 쥐고 각종 투표를 행사해 왔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최규하 대통령이 잠시 대통령이 된 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제인, 윤석열 정부까지 우리 근대사의 대통령을 두고 살았다. 그 가을마다 어김없이 귀뚜라미가 울었다. 그때도 귀뚜라미는 ‘귀 뚫어라, 귀 뚫어라’ 울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외진 모서리 틈을 비집고 울고 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그렇게 귀뚜라미 소리가 사방 곳곳에서 심금을 울리는 소리로 울면서 귀를 밝혀 주었어도, 귀를 밝혀 사람의 심금을 울려준 대통령은 없는 것 같다. 통치의 권력을 잡는 과정이나, 통치 기간에 저지른 죄로 본인이 구속이 되는가 하면 그 가족과 함께 정부를 꾸렸던 사람들의 죄를 물어 구속이 되었다. 이는 마치 맷돌의 손잡이인 ‘어처구니’를 제거하여 다시는 전 정부의 권력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모습처럼 내게는 비추어졌다.

귀뚜라미가 울면 자연의 모든 모습들이 변화를 하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나무들은 열매를 익혀 씨를 맺고, 단풍을 물들여 제 몸을 새롭게 단장한다. 그리고 풀들과 모든 곡식들도 겨울이 되기 전에 씨를 맺는다. 모두 귀뚜라미 소리가 울려주는 그 소리에 제 나름의 시간을 계산해 더는 가지를 뻗지 않고, 더는 꽃을 피우지 않고, 더는 씨앗을 터트려 싹트지 않는다. 물론 겨울을 이겨내는 식물이나 동물들은 그 시기에 새로운 출발의 시점을 삼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도 겨울을 준비하고, 식량을 확보하고, 겨울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를 하며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주는 신호에 맞추어 나름의 몸단장을 치른다.

귀뚜라미와 나와 /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 귀뚤귀뚤 / 귀뚤귀뚤 // 아무게도 아르켜주지 말고 /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 귀뚤귀뚤 / 귀뚤귀뚤 // 귀뚜라미와 나와 /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윤동주 시 「귀뚜라미와 나와」 전문

윤동주 시인도 「귀뚜라미와 나와」에서 잔디밭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달 밝은 밤 독백을 했던 이야기를 했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고 있자는 이야기다. 물론 비유와 은유로 상징되는 시적인 표현이라서 귀뚜라미가 ‘귀를 뚫어라’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경험하는 이는 많지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의 말보다 자연의 비유나 은유 등으로 들려주는 무수한 말이 더 가슴을 뭉클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왜 권자에 오르는 대통령들 그 주변은 해마다 들려주는 자연의 비범한 목소리를 듣지 않는지, 아니면 아예 귀를 막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의 인지도가 사상 최저라는 여론 조사가 있다. 나보다 두어 해 더 많이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온 사람이다. 귀가 뚫릴 만큼 뚫리게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시인 묵객들만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듣는 것이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의 조화로움에 스스로가 가슴을 깨우치게 되어 있다. 이순(耳順)을 넘으면 공자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나이라 했다. 정치인이 나이가 부족해 이해심이 부족한 것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공부가 부족해 덕(德)을 멀리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세상이 날이 갈수록 편파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 같다. 그 편파적인 지향점이 민초들에게는 태풍이 되기도 하고, 물 폭탄을 내리는 먹구름이 되기도 한다.

이 지구가 날로 이상 기온이 심화된다고 한다. 사람이 귀를 뚫지 않고 귀뚜라미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존의 방법을 터득하지 않아 오는 일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앞날을 살아갈 후세들에게 이상 기온이 오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귀뚜라미 소리도 그 하나의 소리다. 자연의 소리를 잘 듣고 편파적인 마음을 버리고 균형의 힘을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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