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사기의 편린(片鱗)
[비로봉에서] 사기의 편린(片鱗)
  • 심규정
  • 승인 2022.10.16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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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인]

사기는 못된 꾀로 남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차용사기’(借用詐欺)다. 남의 돈을 빌렸다가 사기죄로 처벌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차용사기는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인상을 악용한 ‘신뢰사기’에서 비롯된다. 친한 친구인 것처럼 살갑게 대하며 신뢰를 얻은 다음, 상대로부터 가능한 많은 것을 취하는 것이다. 

요즘 사기란 말이 공기 속에서 넘실댄다. 얼마 전 원주시청에서 열린 강원도 주최의 비전공유회에서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와 관련, ‘희대의 사기극이 되면 안 된다’라고 강조한 원주시의회 이재용 의장이 말하면서부터다. 4선 시의원, 의장이란 천근만근의 무게감, 지역의 원로로서 공개된 자리에서 던진 이 의장의 발언은 지역사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응은 엇갈렸다. “너무 과격한 발언 아니냐”는 반응과 함께 ‘맞는 말 아니냐’는 분위기도 상존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의장이 주위로부터 얼마나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공개된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했겠냐”라며 “꼼꼼하게 유치 전략을 세워 공약을 이행하자는 고도의 정치적 훈수가 담긴 메시지”라며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가 과연 가능하겠냐”며 불가능 쪽으로 무게를 두면서 “실패할 경우 사기에 버금가는 사안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삼성 반도체 공장 유치 공약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국민의힘의 효자 공약이다 보니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얄궂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부정의 기류는 앞뒤 안 맞는 구석이 많다.

바로 전임 시장 때 추진한 ‘화훼특화관광단지조성사업=실패한 사업’이라는 주홍글씨가 아직도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이사는 1심에서 특가법(사기)등 혐의로 15년을 선고받고 지금 감옥신세를 지고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피고인은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범죄 구성이 탄탄해 무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화훼특화관광단지조성사업과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는 사업 성격이 확연히 다르지만, 닮은꼴이 여럿있다. 전자는 5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공약, 후자는 8대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의 공약이다. 묘하게도 도지사·시장 후보의 공통공약이란 점도 같다. 화훼특화관광단지조성사업은 당시 알려진 투자규모만 5,000억 원,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는 수조 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사업이다. 하여간 스케일이 놀랍다.

다시 원주시의회 이재용 의장(4선)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원창묵 시정(12년)의 화훼특화관광단지조성사업의 추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목도했다.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행정력이 얼마나 낭비됐는지, 재산상의 피해를 얼마나 입혔는지 지켜본 장본인이다. 이런 원주시정의 뼈아픈 경험이 오버랩되어 아마도 격한 표현을 동원해 우려를 표명했을 것이다.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브리핑에 나선 원강수 시장도 오죽했으면 “시민들로부터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가 정말 가능하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고 말했을까.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흔히들 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절대 명제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성취를 위해 매진하는 것은 의미있는 도전이다. “끝까지 해보기 전까지는 늘 불가능해 보인다”라고 한 넬슨 만델라의 격언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원강수 시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강원도와 함께 원주시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치밀한 유치전략 아래 준비하고 있으니 지금은 조용히 지켜보는 게 예의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면 안되지만, 표범이라도 그리면 꿩먹고 알먹는 전략이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본다. 

글문을 닫기 전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결과적으로 화훼특화관광단지 조성사업의 사기 무대를 활짝 열 수 있도록 원인 제공한 측에서 삼성반도체 공장 유치를 “사기 아니냐!”라고 하는 것은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공학적인 애드벌룬 띄우기라고하면 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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