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황장목
[기고] 황장목
  • 김대중
  • 승인 2022.10.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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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언론인)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1659년 11월 18일 사간원의 사간 심세정이 상소를 올렸다. 김경항이 원주목사로 재임 중에 황장목(黃腸木) 80그루를 몰래 베어 관(棺)을 짜는 재목으로 팔아먹은 일이 발각된 것이다. 황장목을 훔친 김경항 원주목사를 처벌하라는 상소는 이날 처음 나왔다. 이때는 평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조정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바로 1년 후에 조선의 조정에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오는 초대형 게이트가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658년 11월 10일에 원주목사로 부임한 김경항은 이 상소로 이듬해 12월에 파직됐다.

사간 심세정(沈世鼎) 등이 아뢰기를

“원주목사(原州牧使) 김경항(金慶恒)은 황장목(黃腸木) 80여 그루를 몰래 베어 관판(棺板)을 만드는 등 너무나도 탐학한 짓을 제멋대로 자행했으니, 잡아다 국문하소서.”

하니, 따랐다. 현종개수실록 2권 즉위년 1659년 11월 18일.

(황장목, 금강소나무로 창씨개명되다 중)

이 상소로 조선 18대 왕 현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660년 10월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김경항이 원주목사 때 황장목을 훔친 사건에 대한 상소가 두 달 동안 무려 12차례나 쏟아졌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소나무 도둑질로 탄핵을 받고 나라를 뒤흔든 사건은 현종 때의 김 경항 원주목사 사건이 유일하다. 상소가 한 두건도 아니고 무려 12차례나 쏟아 진 사건도 드문 일이다. 그 많은 동네 중에 하필 원주 목사가 그런 짓을 저질로 조선의 조정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원주 이름을 X망신 줬다. 원주목사는 지금의 원주시장이다. 원주시장이 황장목 소나무를 도둑질하다 적발된 참으로 창피스런 일이 지금으로부터 362년 전에 일어났다. 김경항 원주목사는 재임 중에 사심만 갖고 도둑질이나 했으니 본연의 업무는 오죽 했을까.

그가 도둑질한 황장목은 도대체 어떤 소나무인가. 황장목(黃腸木)은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금강소나무이다. 줄기가 곧고 가지가 위쪽으로만 있으며 수령이 오래돼 속이 누런 소나무이다. 최고 품질의 소나무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소나무를 왕의 관(棺), 궁궐 건축, 병선(兵船)의 건조 등 3가지 용도로만 썼다. 나라에서 이 황장목 군락지를 금산(禁山),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거기에 황장목 보호를 위한 표석(標石)을 설치했다. 그 표석의 대표가 황장금표(黃腸禁標)이다. 황장봉표 등 다양한 표기가 있다. 대부분 동서남북의 방향과 거리를 표시하는 경계(境界) 표석이다.

황장목을 보호하는 표석은 전국 60개 황장봉산에 세워졌는데 현재 발견된 것이 13개에 불과하다. 황장목 대표 군락지인 울진 소광리에 2개가 있고 문경에 하나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강원도에 있다. 그중 치악산 구룡사 쪽에 3개가 있다. 영월 무릉도원면에 2개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원주에 소속됐으니 치악산 자락이다. 치악산에는 황장목 보호 표석이 5개나 되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5개가 모두 황장금표로 표기 됐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표석들은 황장금표라는 표기가 없다.

특히 치악산 비로봉 바로 아래 표석은 황장금표라고 딱 네 글자만 표기됐다. 전국에서 유일하다. 또한 전국에서 유일하게 산 정상에 설치된 표석이다. 황장목 보호 표석의 지존(至尊)이다. 상징이다. 치악산이 평범한 산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명산을 넘어 영산(靈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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