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돈 안 들이고 지역의 명소가 된 까닭
[기고] 돈 안 들이고 지역의 명소가 된 까닭
  • 박창호
  • 승인 2022.11.13 20:1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창호 원장<연세요양병원>

올 초부터 긴박하게 돌아갔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국면 중에 핀란드의 나토 가입 여부가 한때 큰 이슈로 떠올랐다. 예로부터 스웨덴, 러시아 양 군사 대국 사이에 위치한 핀란드는 지난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개최와 북유럽 디자인 강국으로서 유명하다. 러시아와 아주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호수와 나무의 나라다. 

두 나라의 국경에 카렐리야가 있다. 핀란드 영토였다 지금은 러시아 영토인데,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시벨리우스(Sibelius)는 카렐리야 모음곡을 작곡하여 울창한 침엽수림을 악보에 묘사했다. 이렇게 나무와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사색과 영감을 불어 넣는다. 

옛 원주여고 터는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아름드리나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무려 312여억 원이 투입된 복합문화교육센터가 들어섰는데, 지하 주차장과 상부 공간만 존재하는 지역주민과 격리된 공간이 되었다. 물론 순기능도 엄연히 있을 것이다. 

최근 주말에 이곳에서 열린 원주문화재단 주최의 2022 원주 그림책 프리비엔날레에 다녀왔다. 그림책 도시로서 위상을 높이고 풍성한 프로그램은 시민들의 관심을 끌 만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된 ‘아티피셜’한 공간 속에서 땡볕을 참아가며 머물기엔 곤혹스러웠다.

 원주 시내를 보더라도 오랜 시간 지켜온 그 많던 나무가 어느 한순간 자취를 감췄다. 냄새가 심하다고, 상가 간판을 가린다고, 나뭇잎이 많이 떨어진다고, 구박만 받던 나무가 막상 없어지니 도시가 너무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선례도 있어 위안거리다. 바로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은행나무길이다. 악취가 나는 은행 열매 냄새에도 불구하고 흥업면 사거리에서부터 막히는 2~3km 길을 뚫고 많은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금빛 은행나무 숲이 자아내는 정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하는 유유자적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을 지을 수 없었다. 머지않아 에세이의 한 테마를 장식하지 않을까 나름 기대해본다.

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가꿔온 자산이 시민들에게 안식처를 선사하고 있다는 점, 관학(官學)이 함께 시민들을 위해 고민한다면 예산 투입 없이도 지역의 명소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이 굳이 제천이나 충주까지 가서 꽃과 낙엽을 보러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벌써 늦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시기다. 가을색 짙은 한폭의 수채화 같은 캠퍼스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변함없이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은행나무 숲길이 마음의 숲길이 되어 삶의 여유를 갖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단계동 사람 2022-11-22 19:43:23
글쓴분의 도심속 숲속에 절대 동감합니다
원주 근처 여주, 충주는 남한강 이란 자연 근접으로
도심이 자연 휴양지가 되었지만 원주같이 도심을 뒤집어 놓아 콘크리트 요새로 만들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연 그대로 잘 유지 상생하는 책임자의
지혜라고 봅니다
멀쩡한 아름들이 나무를 마구 잘라버리면 결국
그 피해는 우리 시민인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남아있는 도심 숲속을 잘 유지하여
시민의 휴식처를 만들어야 겠다고 봅니다

나름 2022-11-14 20:35:06
관련행사는 따뚜경기장이나 종합운동장. 치악예술관 등에서 하면 접근성도 더 좋을텐데...
왜 원주여성의 상징적인 장소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주여고 2022-11-14 14:20:35
원주여고의 아름드리 나무를 베어낸 것은 역사의 아픔이 될 것입니다. 나무는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잘 자라도록 지켜주어야 하는 것인데..... 뛰어놀던 운동장도 없어지고.... 추억을 빼앗긴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김미정 2022-11-14 13:28:02
남원로는 지난번 지중화공사로 도로는 넓어지고 깨끗하게 정비되었지만 주변상가분들은 주차장이 없어지고 가로수도 그늘을 만들어 주지 못해 삭막한 도로가 되었어요. 가로수가 안된다면 봄부터 가을까지 꽃밭을 만들어 꽃길을 만들어 주시면 아름다운 남원로가 되지 않을까요? 주민들끼리 공동체사업으로
꽃화분 몇개를 하기보다 원주시에서 꽃길 특화거리를 남원로로
지정해서 해 주시면 주민들이 관리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