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78) 스메타나의 조국 (1)
[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78) 스메타나의 조국 (1)
  • 최왕국
  • 승인 2022.11.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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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왕국 [작곡가]
△최왕국 [작곡가]

<청각 장애를 가진 작곡가>

며칠 전 필자의 친구가 sns를 통하여 진지하게 묻는다.

"왕국아 그런데 베토벤이 귀가 안들렸다고 하는데, 귀가 안들려도 작곡이 가능해? 그것도 오케스트라 곡이?"

"그럼 가능하지. 나도 가능한데 뭐! 나뿐만 아니라 웬만한 작곡가들은 다 가능해. 다만 자기 곡 연주를 어떻게 했나 들어 보고, 감상할 수가 없으니 그게 슬픈 거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서 느낌이나 분위기가 확 달라지거든" 그렇다. 귀가 안들려도 곡은 쓸 수 있지만 그걸 들어볼 수 없다는 건 작곡가에게 있어서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베토벤의 번뇌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다.

<스메타나의 조국>

그런데 베토벤 외에도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작곡가가 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체코 국민음악파 작곡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이다.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Prague)’는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 왔기 때문에, 생활과 언어는 물론 음악도 모차르트 등 범독일권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교향곡 38번의 부제도 ‘프라하’이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도 프라하에서 초연됐을 정도...

그러나 체코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음악 분야에서도 민속적인 리듬과 선율을 면면히 이어왔다.

스메타나는 맥주 양조장을 하는 아버지의 막내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아마츄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그는 모차르트와 바그너를 흠모하고 리스트와 슈만 등과 교류하며 독일식 음악을 했지만, 보헤미안의 민족성을 지켰고,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저항운동에 필요한 음악들을 작곡한 건 당연한 일...

이렇게 보헤미아 민족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나타낸 스메타나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오페라 ‘팔려간 신부’와 교향시 ‘나의 조국’이다. 오페라 ‘팔려간 신부’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교향시 ‘나의 조국’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스메타나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딸 넷을 낳았지만 그 중 3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조국 체코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귀까지 안들리는 상황이 닥쳐왔다.

이쯤 되면 보통사람 같았으면 인생을 체념하고 한숨과 원망으로 여생을 살아갔을텐데 스메타나는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나의 조국"이라는 연작 교향시를 6편이나 작곡했다.

그런데 첫 번째 교향시를 완성하고 두 번째 교향시를 작곡할 때쯤 그의 청력은 완전히 손실되었다. 작곡가에게 청력 손실이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지만 스메타나는 굴하지 않고 작곡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렇게 불후의 명곡인 2번 ‘몰다우 강’이 탄생하게 되었다.

원래는 3곡으로 완성하려 했지만 곡을 쓰면 쓸수록 조국에 대한 사랑이 타올라 6곡으로 늘었다. 결국 6곡 중 5곡을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쓴 셈이며, 그 시기 작곡한 현악 4중주 ‘나의 생애에서’도 불후의 명곡이다.

오늘 감상할 곡은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중 2번째인 ‘몰다우 강’이다. 그런데 ‘몰다우’는 독일식 발음이기 때문에 체코어 ‘블타바(Vltava) 강’이라고 해야 맞다. 만일 한국의 강 이름을 일본식으로 부르면 되겠는가?

‘블타바 강’은 보헤미아 지역을 관통하여 프라하에 이르는 강으로 굽이굽이 강줄기를 따라 체코인들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는 민족의 생명줄이다.

플루우트의 단편(短片)으로 시작하여 클라리넷으로 이어지고, 현악기군이 받고 전체 악기로 번져나가는 곡 전개는 두 샘에서 발원해 차가운 강과 따뜻한 강의 두 줄기가 모여 큰 강줄기를 이루어 민족의 삶을 싣고 프라하로 달려가는 블타바 강물을 묘사한다.

지면 관계상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이루는 6개의 교향시 목록은 다음 칼럼에서 소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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