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가로수의 두 얼굴...너무 다른 도시의 품격
[비로봉에서] 가로수의 두 얼굴...너무 다른 도시의 품격
  • 심규정
  • 승인 2022.11.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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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부 도시인 수원특례시에 자주 간다. 대학교 졸업 후 풍운의 꿈을 품고 10년 동안 살던 곳, 아직도 많은 지인이 있는 곳이다. 맛집도 많아 그 시절, 입맛을 잊을 수 없으니 자주 찾을 수밖에. 무엇보다 수원 구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의 모습은 예스러움의 극치다. 최근 이곳 가로수를 보고 가을 정취에 훔뻑 취했다.

창용문 사거리에서 팔달구청까지 700m구간을 승용차로 이동하던 중 가로수 풍경이 이채를 띄었다. ‘가장 오래된 수종’으로 알려진 은행나무 수관의 경관미와 심미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전체 수고(나무의 높이)중 찐빵 모양의 수관이 나무 위에 걸터앉은 모양새다. 수형관리에 온갖 정성을 쏟은 것 같다. 인근 상가의 간판을 가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도시 미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원 창룡대로 은행나무 
△수원 창룡대로 은행나무 
△수원 정조로 플라타너스

어디 이뿐인가. 옛 도심 중심가인 정조로의 플라타너스(버즘나무) 역시 주변 상가의 불편이나 차량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직사각형 모양의 인공형 수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흰색 수피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관리가 잘 되는 것 같았다. 플라타너스는 잎이 웬만한 나무의 잎보다 10배는 크고 웅장해 그레이트 메이플(Great Maple)이라고 불린다. 이 때문에 청소하기 번거로워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공해물질에 대한 흡수력이 뛰어나고 바람을 잘 막아준다는 이유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 보스턴에서 가로수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나무는 1960, 1970년대 가로수 인기 수종이었다.

눈을 원주로 돌려보자. 수원에서 본 것과 같은 수종인데 관리상태가 너무 대조적이어서 씁쓸한 마음을 지을 수 없다. 북원로 단계사거리에서 1군 사령부까지 심어진 플라타너스는 수관이 거의 헐벗은데다 과도한 가지치기 탓인지, 사실상 앙상한 몸통만 성냥개비처럼 휑하니 서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특유의 희끗한 수피를 자랑해 우리말로 버즘나무라고 명명됐는데, 목질부 내부가 썩거나 동공이 심해 가로수의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북원로 플라타너스 
△시청로 은행나무 

마치 ‘못생긴 플라타너스의 표본 전시장’ 같다. 잘못 관리되고 있는 가로수의 모델쯤으로, 보란 듯이 방치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플라타너스 길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했다. 시름시름 앓는 플라타너스를 볼 때마다 온몸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는 듯하다.

원주시 가로수 가운데 또 다른 흉물은 시청로 귀론사거리에서 매봉 사거리까지 중앙화단에 심어진 은행나무다. 수령이 족히 30년 이상 된 것처럼 보이는데도 앙상한 가지만 보일 뿐 특유의 황금갑옷은 기대하기 어렵다. 쉴 새 없이 오가는 차량에 부딪칠까 봐 가지를 수시로 잘라냈기 때문이다. 중앙화단에 어떻게 은행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잘못된 수종 선택이 무리한 가지치기를 자초해 추목(醜木)의 파노라마를 선사(?)하고 있다. 이곳 길 양쪽에 하늘로 쭉쭉 뻗은 오렌지색 메타세콰이어길의 풍경을 반감시키고 있다.

산림청은 각계 전문가의 자문을 토대로 ‘도심 가로수 수형관리 매뉴얼’을 발표했다. 67쪽에 달하는 이 매뉴얼에는 전정, 수형모델 개발, 주요 수종 수형관리 지침이 세세히 담겨있다. 발간사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도시숲을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가꾸길 원하고 있습니다. (중략) 도시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서 도시미관과 경관을 살리고,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도시 랜드마크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핵심 공간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이 보고서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0년 발표한 자료다. 이 매뉴얼만 제대로 따랐다면 과연 가로수는 이렇게 애물단지가 됐을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을 너무 의식해서 였을까. 원주시의 가로수 행정은 나무만 보고 전체 가로수 풍경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수형관리가 빚은 악선례로 회자될 것이다. 여기에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가로수 훼손 사례도 한몫하고 있다. 가로수 행정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단순 수형관리를 넘어 필요하다면 과감한 수종 갱신도 고려해 볼만하다. 한 도시의 시격인 도시미관을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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