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기고]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 정유선
  • 승인 2022.11.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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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선 [강원도의회 의원]
△정유선 [성평등교육연구센터 ‘이룸’ 대표]

요즘 폭력예방교육 강의를 가서 사람들에게 “한국이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라고 물으면 예년에는 “안전하다”고 답하던 중년의 남성들이 모두 안전하지 않다고 답한다. 안전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하나같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한다. 이태원참사 이전에 사람들의 답변은 남녀에 따라, 연령에 따라 달랐다.

대부분 남성들은 “안전하다”고 답하지만,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일수록 “불안하다”고 답변했다. 불안하다고 답하는 여성들은 늘 밤길이 무섭고, 화장실의 몰래카메라가 두렵다고 말한다. 하긴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도, 얼마 전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범죄도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했으니 많은 여성에게 화장실은 두려운 곳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안전에 대한 개인의 체감도는 성별에 따라 다르다. 그 결과 각 지자체에서는 CCTV 설치와 화장실 안심벨 설치를 여성안전에 대한 대책으로 내세운다. 정말 CCTV와 안심벨이 여성을 젠더폭력에서 안전하게 지켜줄까? 여러 통계자료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CCTV는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보다 범죄 발생 후 범인 검거에 유용하다.

신당역 살인사건도, 인하대학교에서 벌어진 교내 강간살인사건도 765대의 CCTV가 있었으나 재학생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 이런 보도를 접하면 우리는 또다시 밤길과 공중화장실의 안전을 떠올린다. 그러나 성범죄의 80% 이상이 서로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만 최소 260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평균 1.4일에 1명꼴이다.

문제는 우리 머릿속이다. 언제나 성폭력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깜깜한 밤 어두운 골목길을 노출이 많은 옷차림을 한 여성이 혼자 걸어가다가 연쇄살인범이나 싸이코패스가 흉기를 들고 납치∙강간∙살해하는 장면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또다시 우리사회는 여성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차림과 술을 마시고 밤늦게 다니는 피해자가 문제라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외국에서 수입된 축제에 분별없이 놀러 간 너희가 문제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가족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발생한 성폭력이 3만1천3백96건으로 한국에선 매일 86건의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여성가족부에 통보된 공공부문 성폭력 사건은 922건, 최근 5년간 대학 내 성범죄 발생 건수도 1200건이 넘는다. 이렇게 통계에 잡히는 건수는 신고된 범죄만을 기준으로 하니 신고율이 낮은 성범죄의 특성상 실제 발생률은 훨씬 높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리고 이런 성범죄는 우리가 늘 다니는 학교, 직장, 학원, 가정 안에서 발생한다.

범죄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그것이 흉악범의 범죄이든 재난재해이든 마찬가지다. 우리의 안전은 뉴스에 보도되는 큰 사고보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데이트폭력, 사이버폭력, 가정폭력으로 위협받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도 살인, 강도, 방화, 재산, 교통범죄는 줄었으나 성범죄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에서 성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원주다. 그러나 원주시는 성범죄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도 아직 없다. 피해자·가해자의 성별과 연령, 관계, 범죄 발생 뒤 검거, 수사, 사건처리 결과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예외 없는 가해자 처벌과 빈틈없는 피해자 지원, 2차 피해 방지 체계 구축과 인식개선 등의 적극적인 지자체의 대응이 필요하다. 모두가 안전한 원주! 성폭력 없는 원주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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