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돌봄과 성장
[살며 사랑하며] 돌봄과 성장
  • 원주신문
  • 승인 2022.12.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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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며칠 전 70대 중반의 부부가 찾아왔다. 구순이 넘은 어머님을 한 달 가량 시설에 모시기 위해서다. 태국에서 집안의 큰 행사가 있는데 거동이 어려운 어머님을 모시고 갈수가 없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어머님이 계실만한 친척들을 찾아보았으나 서로의 사정이 있는지라 부득이 시설 이곳저곳을 찾아 다녔단다. 어머니는 거동에 부분도움이 필요하고 인지증 장애로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말씀을 종종하시는 정도였다.

시설 이용을 위해 잠시 딸과 나눈 대화를 옮긴다. “우리 엄마는 그 시절에 우리나라 명문대를 나오셨지요. 국가기관에서 사회활동 경력도 있고요.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무렵 아버지는 엄마와 우리 사남매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지요. 그때 엄마 나이 마흔 다섯이었어요. 심리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엄마는 흔들림 없이 우리를 키우셨지요. 바르고 분명한 엄마의 돌봄 스타일은 언제나 일관성이었어요. 엄마는 말과 행동이 같은 분이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지요. 엄마의 정직하고 일관성 있는 돌봄을 바탕으로 우리 사남매는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음 앞에선 장사가 없나봅니다. 엄마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세요. 밤이고 낮이고 수시로 나를 불러댑니다. 하루에 백번도 더 부를걸요. 그렇지만 엄마가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 몸 힘들단 말을 못해요. 어떨 땐 엄마랑 같이 기어 다닐 때도 있어요.(하하하) 그래도 난 엄마가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간은 어차피 다 죽잖아요. 마음 같아선 이 세상 떠날 때 엄마 손잡고 함께 가고 싶어요. 엄마의 지극한 돌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드셨으니, 이제 우리들 차례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늦지 않도록, 너무 불편하지 않도록 주어진 환경에서 지극정성으로 살피려고 합니다. 물론 아주 가끔은 말을 잘 듣지 않는 내 몸이 마음을 흔들 때도 있지만요.(하하하)...“

돌봄과 성취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근원적이며 핵심적인 요소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dler, A.)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심리를 힘(power), 완전(perfection), 그리고 안전(security)으로 보았다. 힘은 성장이며, 안전(安全)은 돌봄에 대한 요소와 같다. 따라서 돌봄과 성장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균형을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이며, 선천적으로 우리의 내·외부에 심어진 본능인 것이다. 먹는 본능, 자는 본능, 그리고 성적인 본능은 신체적인 근거를 둔 본능이지만, 돌봄과 성장은 정신적인 근거를 둔 본능이다. 이 두 가지 요소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묻는다면 당연히 돌봄이다. 사람이 성장해 가면서 자신이 목표한 것을 나름대로 성취하고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기저를 붙들어 주는 돌봄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Heidegger, M.)는 인간의 모든 것은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며, 인간은 우주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표현을 했다. 그래서 인생은 불안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오토 랭크(Rank, O)는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우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불안은 인간의 긍정·부정적인 상태를 배후(背後)에서 움직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과도한 불안은 생활을 위협하는 신경증적 상태로 만들기도 하지만 적당한 불안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불안은 가급적 좋은 부모가 있는 가정환경과 사회 환경을 통해서 극복되어야 외부의 상황이 비로소 모험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관된 돌봄은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바른 것에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살아가야 하는 신비로운 것이다”라고. 그래서 짊이 버거운 인생길은 성공과 성취에 목마른 인생이지만, 진심 어린 돌봄과 관심을 받는 사람의 인생은 신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신비는 인생을 사는 동안 내내 그 위력을 발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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