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현자 作 / 폐업 중
[시가 있는 아침] 박현자 作 / 폐업 중
  • 임영석
  • 승인 2022.12.11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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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중

박현자

오랜 시간 손때 묻은 터전이 사라진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어

햇살에도 휘청거리던 콘크리트

그곳에 벽화로 새기던 지난 시간 허물어지며

문신처럼 낙관을 새기던 거래명세표

골목마다 숨죽이던 희망 곁가지마저도

검은 봉지 속으로 쓸어 담는다

터전 곳곳마다 걸린 흔적들 떼어내며

서로가 등을 보이는 엄동

아무렇게나 돌다 정착하는 바람조차

몹시 부러운 지금

천천히 일생을 묻었던 터전을 닫는다

철문에 못질을 하며 문패마저 울고 있는 겨울

12월이라 적으며 폐업이라 신고하는 우리

어떤 형벌을 견뎌야 하는 걸까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하는 13월

희망이라 적으며 먼데 하늘을 본다

박현자 시집 『아날로그를 듣다』,《황금알》에서

폐업이란 하던 일을 그만두는 일을 말한다. 사람의 삶도 그러고 보면 하던 일처럼 성업을 하던 때가 있고 하던 일이 안 되어 문을 닫을 때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 말하고, 이 운명이 다하는 순간을 죽음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운명의 시간을 지나오는 길을 보면 삶의 터전은 늘 위기 아닌 위기를 거친다. 박현자 시인의 시 「폐업 중」을 읽으면서 세상 사람이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서, 어떤 사람은 일에 흥미가 없어서 접는다. 사람마다 그 이유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손님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을 폐업한다는 것은 건강을 잃었을 때 가장 많이 생의 문을 닫는다. 우리들 인생에 13월이 찾아오는 걸까? 원 둘레처럼 돌고 돌아 세월은 계절의 감각을 잃지 않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매번 비슷비슷하게 보여준다. 어느 삶의 골목이나 따뜻했던 추억들은 낙엽처럼 쌓여있다. 왜 이승의 어둠이 저승의 희망을 불러내야 하는지 나는 늘 궁금하다. 그러나 삶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희망이라는 빛을 바라보기 위해 하늘을 본다. 나의 나태함이, 나의 게으름이, 나의 무능함이 세상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으로 폐업이라는 말이 완성된다고 본다. 폐업은 도 다른 삶의 종점이 아닌 출발점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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