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슬픔을 공부하면 기쁨이 올까
[안부를 묻다] 슬픔을 공부하면 기쁨이 올까
  • 임이송
  • 승인 2022.12.18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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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나의 첫 슬픔은 여섯 살 때 만들어졌다. 엄마는 한 살 위인 오빠에게만 사과와 홍시를 먹였다. 그때 우리 집에선 돈을 주고 무얼 사먹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겨울이면 오빠를 위해 이웃집에서 사과와 홍시를 사왔다. 엄마는 그것을 하루에 한 개씩 오빠에게만 먹였고, 그 심부름은 꼭 나에게 시켰다. 오빠 혼자 그 귀한 걸 먹을 수 있었던 건 오빠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심부름을 할 때마다 나는 그것들이 무척 먹고 싶었지만, 한 번도 엄마나 오빠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아이의 자존심은 그때 훼손되었다. 아들과 딸에 대한 엄마의 차별이 내 슬픔의 모태가 된 셈이다.

그 다음 슬픔은 초등학생이었을 때다. 한여름 저녁 무렵이었다. 방송국에선 갑자기 진행 중이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육영수여사의 서거소식을 알렸다. 그날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라디오에선 슬픈 음악이 며칠 내내 흘러나왔다. 음악이 비처럼 슬프게 흐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친구들은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슬픈 얼굴로 학교에 다녔다. 그 다음으로 찾아온 슬픔은 박정희대통령 총살사건이었다. 육영수여사 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 온 나라를 휘감았다. 그때도 검은 리본을 달고 더 오래 엄숙한 모습으로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에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와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등을 겪으며 새로운 슬픔을 맞아야 했다. 더불어 트라우마라는 것도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더 큰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뒤로 밀려났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렸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건물 더미에 깔린 것처럼 오래 아팠다. 그 일은 직접 겪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상처로 다가왔다. 각각의 사건들을 겪는 사이 트라우마는 나와 국민들에게 그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리고 닥쳐온 세월호 침몰사고. 그때의 슬픔은 무너지고 갇히고 깔린 정도를 넘어 검은 물에 수장된 것 같았다. 그 슬픔은 수장된 아이들을 모두 찾아내고 배가 인양되어 육지로 옮겨질 때까지도 시간과 함께 고스란히 흘렀다. 끊기지도 끊어지지도 않는 애도였다. 노란색만 봐도 가슴이 덜컥, 할 정도로.

또 느닷없이 맞은 이태원 압사사고. 조금 옅어지려던 세월호 침몰사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아찔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아프다. 그야말로 패닉상태다. 사고도 충격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애도기간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우리 모두는 몸으로 익히 배웠다. 슬픔은 기간을 정해놓는다고 하여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안에서 머물 만큼 머물고 흐를 만큼 흘러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뜬금없이 애도기간을 정해주었다.

날씨가 무척 좋았던 2009년 오월의 아침. 노무현대통령의 서거소식도 참으로 황망했다. 어릴 적 육영수여사의 서거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온몸이 멍했다.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두 죽음에 대한 나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죽음은 모르는 슬픔과 아는 슬픔의 차이로 다가왔다. 그건 강요되거나 강요되지 않은 의미로도 다가왔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는 스무 살이었다. 장례식 내내 울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의 죽음으로는 울어본 적이 없다. 슬픔보다 더 큰 충격과 절망의 덩어리가 나를 계속 짓눌렀기에 슬픔은 표현되지 못했다. 슬픔보다 먼저 온 감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슬픔을 맞고 보낼 수 없게 된다. 내가 아버지를 제대로 애도한 것은 20여 년이 지난 후였다. 어떤 슬픔은 그렇게 늦게, 잠잠히 찾아오기도 한다.

내 아이들과 같은 세대인 청년들의 죽음. 어느새 유전자처럼 흐르는, 사회적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그것이 또다시 나를 장악한다. 나는, 우리는 이 슬픔에 또 얼마나 오래 묶이게 될까. 애도기간이 끝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아득하다. 나에게 슬픔을 준 것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대부분 예방 가능한 사건들이었다. 아버지의 병조차도. 노란 리본에서 검은 리본으로 바꿔 달아야 하는 우리는, 그래서 슬픔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최소한 같은 인재로 인한 슬픔을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해서. 기쁨은 슬픔을 온전히 애도한 후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에서나 찾아올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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