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자
[살며 사랑하며]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자
  • 임길자
  • 승인 2023.01.0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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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에서 모스크바에서 병사한 스테판,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벤야민 등 먼저 간 친구들을 기리며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꿈속에서 죽은 친구들이 나타나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하자 “나는 내가 미워졌다.”고 했다. 힘겨운 시대를 함께 하지 못하고 친구들을 먼저 보낸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지난 해 10월 29일 이태원에선 159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누군가의 총칼로 죽었거나, 비행기가 추락해 떨어져 죽었거나, 배가 침몰하여 바다 속에서 익사한 것이 아닌, 그냥 길을 걷다가 사람에 눌려 시커멓게 멍든 채 숨을 거뒀다. 최첨단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맞닥뜨리게 된 참사(慘死)라서 더 안타깝다. 유가족들의 말처럼 ‘안전불감증(安全不感症)에 의한 간접 살인’ 말고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나라입니까?” 라고 절규하는 유가족들의 질문에 국가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얼마 전 모 언론매체와 “저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자 생존자이며 목격자입니다.”라며 인터뷰를 했다. 누나를 현장에서 잃고 엄마와 살아남은 박○○씨가 가족들이 이태원에 가게 된 이유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말한다. “다 큰 애들이 놀다 죽은 것을 왜 국가에게 책임을 묻느냐고” 또 어떤 이는 “세금이 아깝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린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한 다리 건너가면서 내가 아는 이의 형제자매였고, 그 친구에 친구들이었고, 지인의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우리 국민 누구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참사가 일어날 당시 신속하고 기민한 대처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압사(壓死)? 뇌진탕 뭐 그런 거겠지. 참사? 단순사고로 보아야... 토끼 머리띠 장식의 인물을 찾아야 해... ‘추모’나 ‘근조(謹弔)’라고 쓰인 글씨를 뒤집어 달도록... ” 하는 등, 누가 어떻게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 정부는 5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정했다.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차려 놓고, 위패도 영정도 없는 빈소에서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매일 국화꽃을 건네며 조문하는 정부관계자들의 낮선 풍경에 많은 국민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국가 지도자에겐 국민들의 세금을 꼭 필요한 국가 경영에 사용함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야 할 책무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심각한 사회갈등이다. 그 갈등을 해소하고 해결하기 위해 통합과 협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어떤 것이 통합이고, 협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온 국민들이 다 알고 있고, 모두가 바라고 있는 통합과 협치를 왜 실천하지 않는가? ‘법과 원칙’이란 포장지에 쌓여 정작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국가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자.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자. 이 세상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를 위로하고 살피며 살기에도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잘 사용할 수 있다면 믿어 봄직한 세상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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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소원성취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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