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군산(昭君山)을 아시나요
[기고] 소군산(昭君山)을 아시나요
  • 김대중
  • 승인 2022.12.25 2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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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언론인)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조선 순조 때인 1829~1831년에 편찬된 관동지(關東誌)의 원주목(原州牧) 부분에 소군산(昭君山)이 나온다. 모두 15책으로 구성된 관동지의 제 1책에 수록된 원주목(原州牧)의 원주 소개 자료인 원주지(原州誌)는 원주의 역사를 알려주는 가장 기초적인 사료이다. 원주 산천(山川) 소개란에 보면 ‘소군산은 고을에서 북쪽으로 35리에 있다. 그 동남쪽 기슭에 칠봉(七峰)이 있는데 특이하게 바위로 쌓여진 절벽이 깎아지른 듯이 서있다. 맑은 계곡이 얽히며 돌아가고, 그 속에는 칠봉서원(七峰書院)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군산(昭君山)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등장 한다.

바로 지금의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산이다. 원주에 오래 산 사람들도 잘 모르지만 칠봉서원이나 칠봉에 관심 있으면 아마 소군산 이름을 들어 봤을 것이다. 한자 뜻을 보면 빛날 소, 임금 군 자다.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그 안에 칠봉서원이 있다. 운곡 원천석 선생을 모시는 서원이 거기에 있다. 왜 하필 서원을 거기에 세웠는지도 이해된다. 횡성군 서원면의 지명도 거기서 유래됐다.

칠봉서원이 들어앉은 소군산은 또 하나의 귀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바로 광해군의 아들로 추정되는 왕실의 태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태실(胎室)은 왕,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던 곳이다. 음각한 글자들이 마모가 심해 읽기 어렵지만, 태실비 내용으로 태실의 주인공을 선조 때인 1600년으로 추정한다. 세자 광해군 아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이 유력한 것으로 본다. 소군산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를 몰라도 품격이 우러나는 이름인데 알고 나면 정말 달리 보인다. 뜬금없이 왕실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이 원주에 있냐고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주의 역사를 알면 금방 이해한다. 선조의 부인 인목왕후, 인조의 부인 인열왕후가 원주 출신이고 선조의 후궁 공빈 김씨와 고종의 후궁 엄 귀인이 마찬가지다. 원주는 조선 선조 때부터 왕실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땅이다.

그런데 이 소군산 가까이에 있는 간현에 소금산이라고 생겼다. 이 이름은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다. 어느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다. 그래서 유래를 추적해 봤다. 1990년대에 지방 신문사의 어느 기자가 소금산이라고 기사를 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또 어느 모임에서 술 잔을 돌리다 갑자기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소군산 역사를 모르다보니 옛 사람들이 소군산이라는 이름을 소금산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금강이 워낙 명성을 갖고 있는 터에 소군산이라는 이름이 일부에서 불려지니 쉽게 소금산으로 부른 듯하다. 아무튼 소금산은 소위 근본이 없는 이름이다.

지금 소금산이 원주를 대표하는 산처럼 되어 외부에는 거의 그렇게 고착됐다. 원주 역사서에 나오는 이름은 버리고 소금산을 더 알리는데 행정력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영산(靈山) 치악산도 뒷전으로 하면서 상징이 된 것이다. 도심의 주산(主山) 남산도 하루아침에 날려 버려도 무관심이다. 대한민국 최초이며 유일한 옻칠기공예 민간 전문 기업인 원주칠공예주식회사도 버렸다. 원주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다. 요즘 가장 핫한 역사문화 관광상품들이지만 원주에선 쓰레기다. 원강수 시장은 달리 보길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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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는 치악산이 맞지요. 2022-12-27 09:37:57
소금산 아니죠~~~ 치악산 맞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