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백이운 作 / 집
[시가 있는 아침] 백이운 作 / 집
  • 임영석
  • 승인 2023.01.15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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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운

 

집 안에 나란히 집 세 채 앉아있다

 

바람이었고 구름이었고

그늘이었던 집 쉬고 있다

 

화엄華嚴은

비로소 집 한 칸

완성하고 있느니.

 

백이운 시조집 『꽃들은 하고 있네』, 《동방》에서

화엄은 만 가지 행동과 만 가지 덕을 쌓는 일을 화엄이라 말한다. 말이 만 가지 행동과 만 가지 덕이지, 그 세월을 하루 한 가지씩 행한다 해도 보통 사람들은 일생을 바쳐야 하는 세월이다. 백이운 시조집 『꽃들은 하고 있네』에서는 「집」이라는 동일한 제목의 시조가 몇 편 수록되어 있다. 집이라는 것이 춥고 덥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가족의 최소 단위를 구성하는 곳이다. 그런 집 안에 집 세 채가 나란히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 집이, 바람이고, 구름이고, 그늘이라는 집이다. 요즘은 구름이나, 그늘, 바람 같은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파트에 살다 보니 그저 집이 잠자는 공간, 쉬는 공간이 될 뿐이다. 집이란 바람, 구름, 그늘을 만드는 곳이어야 삶의 행동이 옮겨지고 덕을 쌓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부터 과객이나 나그네에게 잠을 재우고 밥을 주는 물을 내주는 인심이 후덕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그런 인심은 친척 간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편하게 살자는 의미고, 서로 간섭하지 않으려는 뜻이다. 하지만 집이 집다운 사람 소리가 사라져 간다. 실존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집이라는 작품 한 편을 읽는 그 의미로도 마음에 지어 놓은 집에 구름을 들이고 바람을 들이고 그늘을 들여 나를 좀 완성해가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 화엄은 아니더라도 화목이란 마음이라도 지니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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