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서상만 作 / 세월 따라 살기
[시가 있는 아침] 서상만 作 / 세월 따라 살기
  • 임영셕
  • 승인 2023.01.22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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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따라 살기

서상만

 

인생 사오십 고개 넘어오며

자식 낳아 키우고 가르친다고

온갖 고초 겪었어도

생각하면 그때가 참 행복했어라

풀꽃 피고 난 뒤 열매 맺는 것

그 이상의 완성 또 어디 있겠나

청려장 하나 만들려고

명아주는 줄기에 용을 쓰고

시간을 당기지만, 자연 앞에

너무 서둘지 마라

서둘면 꿈도 몸도 빨리 시든다

우리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고

눈 감았다 뜨면 금세 바뀔 세상

 

서상만 시집 『저문 하늘 열기』, 《책만드는집》에서

서상만 시집 『저문 하늘 열기』는 소소한 일상의 생활을 담고 있다. 그 스스로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시를 쓴 60년 세월을 이제 그만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욕을 부리지 않고 주어진 삶의 시간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처럼 보인다. 섭섭할 것이다. 詩가 무엇이기에 60년 동안 몸 덩어리처럼 끌고 다녔는지? 그래서 「세월 따라 살기」라는 작품을 읽으며 시인의 삶에 비추어진 세상의 시간들을 엿보았다. 보통은 자식 낳아 기르고 한 가정의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면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명아주처럼 누군가의 지팡이가 되려면 제 몸 용을 써서 뒤틀고 비틀어 단단한 결기를 세워야 노구의 몸을 지탱해 주는 지팡이가 된다. 세상이 밖으로 드러난 것만,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는 아니다. 감추고 싶은 것, 숨기고 싶은 것, 삭히고, 썩히고, 내 몸 밖으로 분출한 땀처럼 그 인고의 시간이 아니면 저문 하늘을 열 수가 없을 것이다. 저문 하늘을 열겠다는 시인의 삶을 보면, 한평생 시를 사랑한 세월을 살았다. 그 동지적 관계로 시집을 주고받는 입장이고, 후배로써 시인께서 시를 그만 내려놓겠다는 서문의 글을 읽으며, 몹시 아팠다. 나, 또한 어느 날인가 그러한 결심을 가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인생약지여초아(人生若只如初兒:인생이 처음처럼 된다면....)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일은 살가죽을 벗는다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롯이 정신을 벗어야 하는 일이다. 그 정신을 벗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보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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