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뒤늦은 후회
[비로봉에서] 뒤늦은 후회
  • 심규정
  • 승인 2023.01.29 19: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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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베스트셀러 작가 조정래의 소설 ‘천년의 질문’은 자본과 권력에 휘말려 욕망을 키워가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한 번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회사의 비자금 장부를 손에 쥔 재벌그룹 사위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속으로 되뇐다.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데 그 연극은 극작가도, 연출가도,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면서 단 1회 공연뿐이다. (중략) 난, 단 그 1회의 공연도 완전히 망쳤잖아, 극작가 노릇도, 연출가 노릇도, 주인공 노릇도 너 스스로 망쳤잖아’라며 소외감, 자괴감에 빠져드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흔히들 인생을 빗대 빛과 그림자의 공존, 우연과 변수, 아이러니의 총합이라고 일컫는다. 인생이라는 교차로는 언제나 황색 점멸등이다. 누구나 박제된 과거를 되돌아보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멍들고 금 간 흔적이 뚜렷이 박혀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얻은 감과 촉으로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꽃길 보다는 굴곡이 많은 요철 구간이,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기보다는 요소요소에 거대하거나 작지만 뾰족한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정표,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실수와 실패를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한다. 그럴 때마다 후회막심에 시린 가슴을 쥐어짜곤 한다. 

저마다 지나 간 과거를 소환해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더욱 꼼꼼히 챙겼더라면, 손해 보는 셈 치고 양보했더라면, 강하면 부러지거늘 왜 외고집을 피웠는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아무튼 IF(만약)를 거론하는 화법 이면에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다른 경우의 수를 되돌아보는 심리적 기저가 짙게 깔려있다. 일간지, 방송사, 지역 주간지 기자 생활 32년째 접어든 나만큼 후회의 쓰나미가 덮친 사람이 또 있을까. 방송사 노조위원장 시절 너무 열심히 활동한 죄(?)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그만둔 점, 잠시 야인생활, 궂은 날만 이어지는 백수의 나날, 그리고 잠시 정치인으로의 외도. 

어디 이뿐인가. 민심의 바다에 풍덩 빠져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공부하고 싶어 1년 동안 택시기사를 자처했던 일, 백지상태에서 지역신문을 창간한 점. 그리고 치열한 삶 속에 바쁘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죄스러움 등등. 이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 유전, 진퇴유곡의 고통은 뇌리에 여전히 응어리로 남아 온몸이 여진처럼 욱신거린다. 간혹 눈물이 차오른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해야만 했는데”라고 말한 미국의 저술가 루이스 E.분의 명구는 이런 기저 부하를 관통하고 있다. 

요지경, 만화경 같은 우리의 삶. 결국 후회는 어떤 선택의 결과로 지남철처럼 달라붙어있다. 우리 앞에는 놓인 수많은 선택지. 그 갈림길에서 직진할지, 좌회전할지, 우회전할지, 유턴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완벽한 선택’과 ‘실패한 선택’이 반복되고 침전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성장한다. 물론 양극단을 조화시키고 모순을 화합시키는 양단불락적(兩端不落的), 양자병합적(兩者竝合的)사고, 다시 말해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같은 속담을 매사 기대할 수 없지만. 

과거는 ‘불변’(不變)이고 미래는 ‘가변’(可變)이다. 누구나 운명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뒤늦은 후회. 이제는 후회의 무게를 다이어트해야 한다.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다. 과거에서 후회를 가져오기 해서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삶을 보석처럼 빛나게 할 수도 있다. 사려 깊게 준비해서 내놓은 ‘최선’, ‘차선’, ‘차차선’이란 비장의 카드가 우리에게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처신하는 꾀바른 선택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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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skim 2023-02-04 06:02:14
"과거는 불변, 미래는 가변". 깊이 생각해 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