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진영대 作 / 술병처럼 서 있다
[시가 있는 아침] 진영대 作 / 술병처럼 서 있다
  • 임영석
  • 승인 2023.01.29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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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처럼 서 있다

진영대

 

주방 모퉁이, 싱크대 옆에

늘 있었던 것처럼 술병이 하나 서 있다.

평소 술을 못 마시던 어머니 제사상에

초헌하고 아헌, 종헌하고도

첨작까지 하고도 반 이상 남은 채로

술병이 하나 서 있다.

밀봉의 마개 한번 열린 후로

술병은 쓰러질 수 없다.

굴러다닐 수 없다.

남은 대로 서서히 김이 빠지면

식구들은 슬쩍슬쩍 술에 취한다.

아내나 아버지나 그리고 나는

한 잔의 음복술도 마시지 못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술에 취한다.

술병이 비고 쓰러질 때까지

아내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술병처럼 서 있다

시천지 동인시집 『달을 먹은 고양이가 담을 넘은 고양이에게』,《시인동네》에서

진영대 시인의 「술병처럼 서 있다」를 읽으면서 세상의 무엇이 온전히 제 것으로 자리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 그대로의 온전한 상태로 보관이 되고, 취급을 받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공산품이나 식료품은 그래서 부패나 위생 등을 관리하기 위해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고, 동물이나 식물은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수명이나 유통기한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있다. 자연이라는 것이다. 진영대 시인이 제사를 지내며 그리움이나 슬픔, 과거 등은 술병에 담겨 있는 술의 농도나 향기처럼 마음을 아무리 단단히 묶어 놓아도 새어나간다는 것이다. 술병은 한 번 개봉을 하면 웬만큼 밀봉을 잘 해 놓지 않으면 김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가정에서도 많이 담그는 담금주 애호가들을 위해 유리병도 나오고 술병 마개도 전용으로 막는 용도의 용품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일반 개인 가정에서는 그럴 필요성까지 느끼지 않기 때문에 술병 마개만 도로 꽉 막아 놓는다. 흔히 놓치기 쉽고 지나치기 쉬운 마음들을 차분하면서도 조리 있게 비유를 하고 있다. 술병은 한 번 마개를 따면 눕혀 놓을 수도 없다고 한다. 때문에 마음대로 굴러다니기는커녕 한 쪽 구석에 놓아져 있다. 필요하지만 언제나 필요하지 않는, 중요하나 언제나 중요하지 않는 그런 용도가 술이다. 가족이라는 게, 혈육이라는 게 그런 관계인가 보다. 제대로 놓지 않으면 향기가 날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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