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방임(방치)도 학대다.
[살며 사랑하며] 방임(방치)도 학대다.
  • 임길자
  • 승인 2023.02.05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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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어느 아들의 하소연이다. 그는 지난해 현직에서 내려와 현재는 무직(無職)이라고 했다. 10년 전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홀로 남겨진 어머님을 가장 자주 찾아뵙는 육남매(아들 다섯, 딸 하나)중 네 번째 아들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혼자 생활하고 계셨는데 지난해 3월 고관절이 골절되어 오랜 기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얼마 전에 퇴원했다.

퇴원 후 한동안은 그(넷째 아들)가 어머니를 직접 케어 하다가 요즘은 요양보호사를 집으로 불러 4시간동안 서비스를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돌아간 이후 어머니의 수발은 다시 그의 몫인데 긴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생각난다고 했다.

아버님께서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동안 아버지 소유의 부동산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어머님 명의가 되었다. 어머님의 몸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수 없다. 생각이 있어도 팔·다리가 제 기능을 해 주지 않는다. 걸어 다닐 수도 없고, 생리적인 욕구가 있어도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된다. 일상생활 모두를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땅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도 없다.

형제들 중 누구도 어머님의 수발비용 해결방법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누워계신 어머님을 어떻게 모셨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 놓는 사람도 없다. 사업을 하고 있는 막내 동생이 생각다 못해 어머님 명의의 땅 일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어머님의 통장에 넣어놓고 현재는 그 통장에서 케어 및 진료비용을 해결하고 있단다.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명절이 추석과 설(구정)날이다. 사는 것이 아무리 바쁘고 고단해도 이 두 번의 명절만큼은 살아계신 부모님 곁을 찾고, 돌아가신 조상 묘에 절을 올리는 것이 우리사회의 통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명절에 그의 가족들은 모이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지금 어머님에게는 여자 손이 더 필요한데 며느리들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형수들을 원망했네요. 어쩌면 죄다 그렇게 냉정할 수 있는지 ...<중략>”

어머니는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어머니가 혼자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다. 욕구를 해결해 줄 사람이 없는 빈 집에 어르신이 혼자 남겨졌다면 이건 방치이고 방임이다. 「노인복지법」 제1조의2 제4호에 “노인에 대하여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방치)하는 것을 노인 학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머니는 여러 자식을 두었지만 각각 자식에게는 세상에 딱 한 사람뿐인 내 어머니다. 자식도 부모도 대신(代身)은 없다. 그래서 부모자식을 천륜(天倫)이라고 하는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누구에게 책임이 더 있다고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어머님에게 여섯명의 자식은 각각의 이름으로 각각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하소연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과 나누어서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생각에서 더러는 밀려오는 화를 소리로 내 뱉기도 한다. 혼자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런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어디 그 아들뿐이겠는가? 노부모가 계신 가정에서는 흔히 있는 고민이고 갈등이다. 감정에 균열이 생기면 오해가 만들어지고, 그 오해는 원망을 낳고 미움을 키운다. 그에게 말했다. “몸이 가까울수록 마음의 온도는 올라간다고, 지금은 어머니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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