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머릿속의 바람
[안부를 묻다] 머릿속의 바람
  • 임이송
  • 승인 2023.02.13 0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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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한때 나는 어떤 사람을 잊으려 무척 애를 썼다. 살아오면서 사람이 잊고 싶은 적은 몇 번 안 된다. 그 사람을 잊고 싶다는 건 그와 함께한 시간을 지우고 싶다는 말과 같다.

오늘 친구와 사람의 바람직한 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모습의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야 잘 사는 것이며, 그 표정은 또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래서 그 기준점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해 오래 얘기했다. 내가 고민하는 지점을 친구도 하고 있어 반가웠다.

살아오는 동안 잠깐 스치거나 오래 만난 사람들을 모두 열거하라고 하면 그 수가 많아 일일이 댈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각기 다른 무게와 의미로 다가왔다가 자연스레 잊히거나 지금까지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나는 여섯 살 무렵에 처음 본 아이를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는 우리 동네 부잣집에 심부름하는 아이로 왔다. 나와 동갑인 그 아이는 주인 심부름과 집안일을 돕느라 종일 종종거리며 지냈다. 나와는 가끔 우물에서 나물을 씻거나 걸레를 빨러 나올 때나 볼 수 있었다. 그래봐야 동선이 겹치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안 되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다. 고향의 늙은 당산나무나 오래된 우물이나 무의식처럼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늑대와 춤을⌟은 백인인 던바 중위와 인디언 수우족과의 우정을 다룬 영화다. 인디언들에겐 침략자인 던바는, 인디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그들의 삶에 동화되어 간다. 마침내 백인의 삶을 버리고 그들로부터 ‘늑대와 춤을’이라는 인디언 이름까지 얻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중 백인 기병대들이 인디언 땅을 정복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자신 때문에 인디언들이 위험에 처해질까 봐 그들을 떠나온다. 그때 ‘머릿속의 바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이 떠나는 던바를 향해 “나는 당신의 친구다. 우린 친구다.”를 목 놓아 외친다. 적대관계였던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잘 스며들고 공명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잠깐 보았던 그 아이를 유독 잊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한 시절 또는 한 순간을 오롯한 마음으로 보낸다는 건 숭고한 일이다. 시간은 물질화하기 어려운 대상이지만, 지나간 자리엔 반드시 무언가를 남긴다. 때론 유형으로 때론 무형으로. 무형의 것이 더 값지고 오래 가는 경우도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만들어지고 그 마음이 애틋하고 따뜻하면 인연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기억 속 인연은 계속 된다. 요즘 사람들의 만남은 다소 형식적이고 건조하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모이긴 하지만, 좀처럼 속을 보이지 않고 정도 잘 주지 않는다. 반복적인 만남이 계속 되어도 쌓이는 것이 없다보니 그 다음 만남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별다른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친구보다는 ‘벗’이라는 단어가 귀한 시대다. 친구는 둘 사이 감정이 두텁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호칭이지만, 벗은 미더운 사이가 아니면 부를 수 없다. 조금씩 감추고 밀어내고 또 일정한 거리를 두어 서로의 마음이 넘나들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만큼 벗을 만들기 어려운 세상이 돼버렸다.

내가 보고 싶은 그 아이와는 같이 놀거나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 우물가에서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일하고 가끔 마주 보며 웃었을 뿐이다. 그 이후엔 만난 적도 없고 소식조차 모르는데도 나에겐 최고의 벗이다. 그 이유를 오늘 친구가 찾고 싶은 사람의 기준에 두면 어떨까 싶다. 예닐곱 살 어린 것들이 서로의 시간을 내 것처럼 아껴주고 맡아주고 공감해주었기에 그 아이가 나에게 또 다른 나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의 얼굴에는 특유의 표정이 있다는 것도.

가끔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주름과 눈빛과 말투와 사용하는 어휘를 조합하면 그 사람의 표정이 된다. 그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내면과 이력이 짚어진다. 남녀노소를 떠나 얼굴에 맑은 빛이 도는 사람이 있고, 주름이 깊더라도 그 사이사이에 선한 기운이 스민 사람도 있고, 행동이 아이처럼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많은 이들은 시간과 함께 잊혀갔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서로의 시간을 온전히 맡아주지 못해서일 것이다.

매시간을 소중히 다루고 간직하는 나로서는 한 사람을 지워낸다는 건 내 속에 그만큼의 구멍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완악한 표정을 가진 사람을 경계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잊고 싶었던 것이다. ‘머릿속의 바람’과 ‘늑대와 춤을’의 사이처럼 그렇게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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