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복선 作 / 무공적
[시가 있는 아침] 정복선 作 / 무공적
  • 원주신문
  • 승인 2023.02.13 0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공적無孔笛

 

정복선

 

어릴 적부터 불고 싶어 한 피리가 있다

문득문득 입술을 대고 불어 보았고

어떻게 하면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궁리했었다

바람이 마음속에 몰려오고 몰려가고

언젠가는 피리를 제대로 불게 되겠지, 되겠지,

어느 날 피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렸다

서랍을 뒤지고 다락방, 선반을 뒤지다가

티끌 속에서 피리를 찾아냈다

말갛게 씻어 낸 아침,

열린 창밖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였다

바로 저거다!

새도 죽을힘을 다해서 제 목숨줄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바람도 억겁 동안 지구를 떠돌아 본 솜씨로

잣나무숲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전 생애를 기울여 제 몸을 연주한 끝에 얻는 한 소리

그것이 저 맑은 새소리, 저 무상한 바람소리라면

피리는 잊어도 되겠다

*무공적(無孔笛): 구멍이 없는 피리

 

정복선 시집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문예바다》에서

내가 정복선 시인의 무공적(無孔笛)을 읽은 것은 2020년 6월이었다. 그 당시는 '유유'라는 동인지에 게재된 것이었고, 이번에 다시 시집 『젊음이 이름을 적고 갔네』에 수록이 되어 읽게 되었다. 무공적은 말 그대로 구멍이 없는 피리라는 뜻이다. 구멍이 없는 데 피리를 어떻게 불을까? 생각을 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세상은 구멍이 있는 피리만 소리를 낸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정복선 시인이 증명한 샘이다. 겨울나무가 바람에 떨며 소리를 내는 것, 파도가 절벽에 와 혼자 부딪쳐 소리를 내는 것, 비와 바람이 땅을 적시고 소리를 내는 것, 이 자연 조화의 움직임이 피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싶다. 때문에 새들이 그 무공적의 소리보다 더 구슬피 울며 제 노래의 울림을 나무에게 들려주는 것이고, 사람의 입으로 부는 피리도 자연의 소리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도 가수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월 앞에 그 소리를 반납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공적을 다루는 자연은 무궁한 소리를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피리에 대한 시들은 참으로 많다. 그럼에도 무공적의 피리를 가슴으로 듣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정복선 시인은 무공적의 피리에 앞서 새들이 들려주는 것 하나로도 충분하니 바람은 잊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생이 끊임없이 울부짖는 피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면 세상을 조율하는 음악이라는 것도 그리 멀리서 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