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용태 作 / 자그만 글자 하나가
[시가 있는 아침] 김용태 作 / 자그만 글자 하나가
  • 임영셕
  • 승인 2023.02.1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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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만 글자 하나가

 

김용태

 

책을 보면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내가

자그만 글자 하나로 눈이 자꾸 감긴다

행간이 끝 간 데 없는 저 여백의 긴 터널-

 

풀어진 활자들이 길을 잃은 안개 속을

깨어진 의미들만 꽃잎처럼 떠돌고 있다.

노자老子의 푸른 치마폭만 강물처럼 퍼지는 이곳-

 

초목이라 다 연둣빛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글자라고 다 뜻을 담는 그릇만은 아닐 게다

가끔은 글자 하나가 일탈하는 봄날에는-

 

조주환 시조 평론집 『서정의 맛과 빛깔』, 《도서출판 경남》에서

 

요즘 들어서 젊은 시인들 시를 읽으면서 무엇이 나와 교차하지 않는 감정인지를 생각해 본다. 교차하는 감정이 없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 낯선 물질의 벽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바뀌어도 사람의 심성에 깃든 사상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다다이즘이나 모더니즘적인 발상도 모두 사람 삶의 진행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고 초현실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철학적 사고로 무장한 작품이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언어의 행적에는 그런 사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읽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며 과거의 행적들을 뒤졌다. 조주환 시조 평론집에서 김용택 시인의 작품 「자그만 글자 하나가」를 읽어 본다. 종장의 끝맺음 처리가 의도성을 띠고 있다. 보통 사람은 책만 손에 잡으면 졸린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면이 보이지 않고 긴 여백의 터널로 데리고 간다고 하고, 노자의 강물처럼 치마폭이 퍼진다고 한다. 그리고 초목이 모두 연둣빛으로 오는 게 아니고 글자들이 모두 뜻을 지닌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봄날은 어떤 뜻을 부여하기보다는 꽃 피는 그 자체, 긴 겨울을 잘 헤쳐왔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풍족한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람 삶의 궁극적인 것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시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궁극적인 그 꿈을 완성해가는 하나의 장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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