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명 作 / 전이
[시가 있는 아침] 이명 作 / 전이
  • 원주신문
  • 승인 2023.02.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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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轉移)

이명

 

마당가 설중매 한 그루

꽃을 피웠을 뿐인데 집이 환하다

봄은 아직 멀었는데

내 마음도 등불 켜놓은 듯 밝다

눈길에 남아 있는 발자국, 기억은 선명한데

가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다리미 하나

홑청이 펴지고

구겨진 마당이 빳빳해진다

눈 감으면 더욱 뚜렷해지는 집의 풍경

겨우내 헝클어진 내 속도 말끔히 펴진다

온몸이 붉게 물든다

 

이명 시집 『산중의 달』, 《한국문연》에서

생각을 옮긴다는 것은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다. 이명 시인의 시 「전이」는 설중매 한 그루 꽃이 피어 온 집의 모습이 환하게 바뀌고 있는 모습을 전하고 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설중매가 핀다는 것은 곳 봄이 당도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 신호를 기점으로 마음도 봄을 맞는 준비를 서둘러야 함을 느끼게 한다. 이명 시집을 읽으면서 서정성과 함께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장이 생각의 도(道)를 넘어서는 그런 감정을 느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감정을 통해 마음을 순화시키는 기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저 읽고 스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 그 감정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애환을 치유하는 목적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 시 곳곳에 표현되고 있는 문장을 보면 그 이미지가 확실하게 가슴에 다가온다. 눈길은 남아 있지만 가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다리미 하나가 있다. 그 다리미가 봄소식을 전해주는 설중매인 것이다. 그 설중매라는 다리미가 홑청을 펴게 하고, 구겨진 마당을 빳빳하게 당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헝클어진 시인의 속도 말끔히 펴지고, 온몸이 붉게 물든다. 찬란한 봄빛을 확산시키는 것은 바로 꽃을 보고 느끼는 기다림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순수감정의 몰입은 결코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 수행의 공덕이 채워져야 이루어지는 감정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감성은 시인의 덕이 충만해져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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