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양윤덕 作 / 풀들이 살찔 때
[시가 있는 아침] 양윤덕 作 / 풀들이 살찔 때
  • 원주신문
  • 승인 2023.03.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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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이 살찔 때

양윤덕

 

염소가 울면

아직 여린 풀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지

내리는 빗방울을 투정도 없이 받아먹고

훈훈해지는 훈풍도 열심히 받아먹어야지

그래야 통통하게 살이 찐 풀잎이 되지

염소의 허기를 채울 수 있지

 

봄의 새들, 그 울음소리에

애벌레들은 깨어나고 아니,

애벌레들이 잠에서 깰 때 새들은

울음을 시작하고 염소는 풀밭을 떠올리고

씨앗들은 수런거리는 것이겠지

 

살찐 풀은 염소의 뿔이 되겠지

아직 날개를 얻지 못한 애벌레들은

갓 부화한 새들의 날개가 되겠지

그럼 나는 몇 편의 텅 빈 종이를 들고

새들, 애벌레를, 살찐 풀과 염소를 불러들여야지

 

독식으로 나의 상상력을 살찌워야지

사전의 골방마다 누에고치처럼 잠들어 있는

굶주린 우화기가 있지

 

풀이 살찔 때 초식동물의 배가 불룩해지듯

맛있는 햇살을 뜯는 풀끝은 바쁘지

배고픈 것들이 있어

세상의 밥그릇은 달그락거리고

가장 크고 둥근 달은

가장 넓고 두꺼운 어둠을 먹었다는

환한 증거겠지

 

풀이 살찔 때

모든 꽃들은 피어나지

 

양윤덕 시집 『풀들이 살찔 때』, 《詩와에세이》에서

양윤덕 시인의 시집 『풀들이 살찔 때』는 전체적으로 시인이 바라보는 일상의 안목들을 닮고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쓰면서 이미 몇 번이나 읽고 읽어왔던 터라, 풀들이 살이 찐다는 의미를 나는 삶의 약육강식, 또는 천적의 관계를 설정하여 받아들이는 시인의 마음을 읽었다. 대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은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거나, 가뭄이 들면 하늘을 원망한다. 땅과 하늘이 이미 무수한 삶의 연줄을 짓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 「풀들이 살찔 때」는 먹이 사슬의 서열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습을 시인은 삶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모습들이다. 그 모습을 독식으로 텅 빈 종이 위에 그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발상은 동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이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른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다. 고라니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고구마 줄기의 순은 먹지 않는다. 새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털이 있는 송충이는 먹지 않는다. 아마 이는 싹을 잘라내면 자신이 먹을 미래의 먹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 세상에서도 전쟁이 나면 종교시설, 학교, 병원 등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니 초목의 풀들이 살아가는 것과 초식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들이 지켜가는 불문율이 지켜진다고 보아진다. 양윤덕 시인은 바로 불문율로 여겨지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꽃의 향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시들을 『풀들이 살찔 때』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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