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어긋한 제사
[안부를 묻다] 어긋한 제사
  • 임이송
  • 승인 2023.03.12 2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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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게도
버거운 제사문화가
후손들에겐 이국문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설에 친정에 갔더니 엄마 표정이 어두웠다. 오빠와 남동생이 아버지 제사를 없애자고 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아버지 제사를 지내겠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당신이 손수 움직여 차리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엄마의 건강이 나빠지고 시류에도 떠밀리다보니, 상황이 바람과는 다르게 흐른 것 같았다.

엄마는 아버지 제사상을 40년이나 차렸다. 며느리와 딸들이 일부 음식을 해가지만, 엄마가 도맡아 하는 것이 있다. 밤을 까고 포를 사들이고 문어도 미리 사서 데쳐둔다. 제상에 올리지는 않지만, 자식들이 좋아한다며 안동 식혜도 한다. 나는 주로 나물을 해간다. 손이 많이 가는 걸 해가야 엄마의 일손을 덜어드릴 것 같아서다. 엄마는 고기와 생선 산적과 탕국과 배추전도 꼭 직접 한다.

5년 전부터 시가의 제사도 없어졌다. 30년 가까이 시어머니와 제사 음식을 준비했던 나로선 홀가분하면서도 직무유기가 아닌가, 하는 얼떨떨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제사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지만, 시가와 먼 지방에 사는데 밤 12시에 지내는 형식도 마땅찮았다. 제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하고 집에 오면 새벽이다. 거기다가 남편은 유달리 밤 운전을 힘들어한다. 눈길에 큰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제사 음식은 가짓수가 많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다. 종일 앉아서 전을 부치다 보면 조상들이 후손들의 이러한 수고를 원할까, 하는 의문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양쪽 집안은 그 방식을 고수하였다. 시가는 시어머니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기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상상도 못할 변화이고 결정이다.

친정아버지의 제사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엄마의 식혜 맛은 일품이다. 안동 식혜는 안동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그 맛을 아는 음식이다. 먼저 찰밥을 고슬고슬하게 짓고 그 다음엔 걸러 가라앉힌 맑은 엿기름물에 불려놓은 고춧가루를 거른다. 빨간 국물에 뜨거운 김이 한숨 나간 찰밥을 넣어 섞고 겨울 무도 엄지손톱 크기로 납작하게 썰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생강즙과 단 것을 첨가한다. 이것을 이삼일 숙성시켜 차게 하여 먹으면 맛있는 식혜가 된다. 식혜를 먹을 때 볶은 땅콩을 곁들이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제사음식을 먹은 후 마지막 의식처럼, 시원한 식혜를 먹으면 느끼한 입안이 개운해지고 더부룩한 속도 편안해진다.

우리 세대에게도 버거운 제사문화가 후손들에겐 이국문화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세대에서 너도나도 없애거나 간소화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평생 제사음식을 먹어보고 준비한 나로서는 그 음식이 조금은 그리울 듯도 하다. 어쩌면 안동으로 헛제삿밥을 먹으러 갈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도 섭섭하지만, 당신이 죽은 후 자식들에게 제삿밥 한 그릇 못 얻어먹는 것도 서운한 눈치다. 나 혼자서라도 간단하게 제사상을 차리고 꼭 기억하겠다며 위로하였지만, 엄마의 허전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아 보였다. 여태 너무 형식에 얽매이다 보니 풍습이 인습이 되고 후손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부정적 문화유산이 되고 만 것 같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시부모와 생각이 가장 어긋한 부문이 제사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며느리인 나의 입장에서지만. 시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식들과 어긋한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는가.

평소 자식들한테 자신의 뜻을 강요거나 고집을 세운 적이 없던 엄마다. 지금도 끼니를 직접 해결하는 엄마가, 죽은 후에 자식들의 밥이 정말로 먹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게다. 나 또한 엄마와 함께 안동 식혜가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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