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약속어음 반도체 공장...만기일은 언제일까?
[비로봉에서] 약속어음 반도체 공장...만기일은 언제일까?
  • 심규정 기자
  • 승인 2023.03.26 20:3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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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여부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꽝이거나 대박이거나
이번에도 12년이란
‘시간의 강’을 넘어야 알 수 있을까.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공약이 어떻게 나왔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메가 이슈인 이 공약을 최초로 애드벌룬 띄운 것은 국민의힘 원주시장 경선에 나선 이강후 전 국회의원이다. 그는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생산시설 증설계획을 발표하자, 그 중 일부를 원주에 유치할 수 있다고 봤다. 나름 인맥을 동원해 가능성을 타진했다. 직접 평택캠퍼스 방문계획까지 세웠다.

공천에서 탈락한 그가 후보를 사퇴하자, 김진태 지사후보와 원강수 시장후보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 공약을 그대로 차용했다. 더불어민주당(최문순 도정, 원창묵 시정 12년)이 장악했던 지방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김진태·원강수 후보로서는 뭔가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공약이 필요했을 게다. 두 후보는 보란듯이 당선됐다. 효자 공약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공약 이행을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산업의 쌀’, ‘첨단기술의 결정체’인 반도체의 생태계는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전방산업, 둘째는 반도체 설계·제조, 셋째는 후방산업을 말한다. 전방산업은 IT·전자산업을, 반도체 설계·제조는 메모리·시스템(파운드리)을, 후방산업은 소재·부품·장비업체를 말한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설계·제조뿐만 아니라 전·후방산업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야한다. 요즘 안테나를 곧추세워보니 수도권 팹리스(설계) 회사 관계자가 원주시를 방문해 몇몇 후보지를 둘러봤다고 한다. 이전 결정을 굳혔다는 말까지 나온다. 앞서 문막동화일반산업단지의 한 반도체 소재 제조 회사는 반도체교육센터 개소식에 맞춰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아뿔사. 정부가 오는 2042년까지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710만 ㎡에 민간의 300조 원을 투입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벨트인 경기도 화성, 용인 기흥, 평택, 이천 등과 연계해 이곳에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입주하는 업체에는 인허가는 물론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정부가 대놓고 지원하고, 기존 반도체 관련 산업이 거미줄처럼 촘촘하니 관련 업체를 더 빨아먹는 블랙홀이 될수 있음은 자명하다. 용수·전력 확보 등 아직 갈 길이 태산준령인 강원도와 원주시로서는 불운의 씨앗이다. 강원도와 원주시는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보면 힘이 부치고 꿈같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결국 꿩 대신 닭이라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중견기업 혹은 규모 있는 소부장 업체 유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쪽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내년 총선을 1년 여 앞두고 있다. 머지 않아 김진태 지사, 원강수 시장의 임기는 반환점을 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유불리를 떠나 설익은 과실(果實)을 남발하거나 사탕발림 같은 언어의 곡예를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 논란이 확산되면서 부도난 수표로 판명된 화훼특화관광단지조성사업이 오버랩되고 있다. 12년전 지방선거에서 최문순 도지사 후보와 원창묵 시장 후보의 장밋빛 청사진에 유권자들은 한껏 기대를 품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는 약속어음에 불과하다. 성사여부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낀 날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꽝이거나 대박이거나 이번에도 12년이란 시간의 강을 넘어야 알 수 있을까. 천리안 같은 예지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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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2023-04-05 17:47:58
30조원짜리 약속어음입니다.

chesskim 2023-03-26 20:50:02
흥미롭고 재미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약속어음, 잘못하면 부도난 공수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빈틈없이 준비하지 못하면 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강원도지사와 원주시장은 꼭 책임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