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치매의 전조’ 청력 저하
[살며 사랑하며] ‘치매의 전조’ 청력 저하
  • 임길자
  • 승인 2023.04.02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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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 갈수록
긍정적인 사고와 배려하는 마음,
너그러운 사람만이 멋진 얼굴을
갖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믿으면 좋겠다.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지난 2017년 6월 아버지는 독거노인이 되었다. 텅 빈 집에서 많이 외롭고 쓸쓸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종종 밑반찬을 챙겨드리고, 동생들을 불러서 집안 대청소를 도와드리고, 가끔은 맛 집을 찾아서 외식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2019년 12월에 「아버지와 일주일에 세끼 밥 먹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용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으며 한 주간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두런두런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버지는 매주 그런 딸에게 줄 밥상을 차렸다. 아버지의 밥상에는 갓 지은 밥에 구운두부 두 쪽, 계란후라이 한개, 구운 생선 한 마리가 같은 모양으로 놓여졌다. 어쩌다 당신이 주말에 집을 비우는 경우에도 밥통에는 새 밥이, 식탁에는 같은 종류의 찬들을 챙겨놓고 나가셨다. 예순이 넘은 딸의 밥상을 여든이 넘은 아버지가 챙기는 집. 이 이야기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딸을 나무라겠지... 남들이 뭐라 건 아버지의 행동은 지금까지 한결같다.

생물학자 G. Bidder는 인간의 생물학적 노화(bio-logical aging)과정에 대해 ‘지상의 모든 척추동물은 이동과 생존을 위해 가장 적절한 크기에 달할 때가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나면 성장을 제한하는 조절기제가 작동하여 잠시 동안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비정상단계가 지속된다. 그 후에는 부적(-)방향으로 성장이 일어나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노화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귀로 정보가 체득되지 않으면 뇌는 인지적 활동을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결과인데, 청력 손실이 약간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두 배가 높고, 청력 손실이 심각하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다섯 배가 높다는 것이다. 결국 청력 손실을 치료하지 않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은 더 커진다고 본 것이다.

아버지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3년 전부터였다. 처음엔 단순히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많은 것을 들었으니 이제 좀 덜 듣고, 덜 말하며 살다 가라는 신의 뜻이 아니겠느냐”라며 검사를 거부하셨다. 일단 보청기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 이유는 보청기를 착용한 지인들이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노인성 질병은 치매다. 그런 아버지의 청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귀로 듣는 정보에 의해 뇌는 인지적 활동을 하게 된다. 매사가 정확하고 치밀하고 꼼꼼한 분인데, 최근 들어 말 귀를 잘 못 알아듣거나, 형식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관련 자료들을 가지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딸의 설득에 결국 보청기를 주문했지만 우울해 보였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긍정적인 사고와 배려하는 마음, 너그러운 사람만이 멋진 얼굴을 갖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믿으면 좋겠다. 불평하고, 의심하고, 집착하는 건 스스로의 얼굴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의 새날을 날마다 응원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거듭 살아야 할 이유를 만나면 좋겠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주실 것이라 믿고 사는 자식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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